[텟츠바] 집요정이 물건을 가져가는 이유에 대해

2차/etc2020. 9. 12. 21:30

 

バンドやろうぜ!

시라유키 텟페이X사에키 츠바사

2017.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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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식은 3월 19일이었다. 18일, 밴드부 연습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시라유키는 꽃집에 들렀다. 꽃다발 세 개가 필요했다. 이 년 동안 시라유키와 가장 친근한 시간을 보냈던 인물 세 명이 한꺼번에 졸업을 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어버버하고 있다가 비웃음을 사지 않기 위해서(그러나 츠바사의 말을 빌리자면 그의 얼굴을 보고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꽃집에 들르기 전에 나름 착실하게 사전 조사를 했다지만 꽃집에는 꽃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꽃집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그 전까지 입속말로 열심히 되뇌었던 이름들은 홑씨로 변해 흩날렸고 시라유키는 꽃집을 가득 메운 꽃 속에서 잠깐 아연해졌다. 이거랑 이거, 이거 주세요. 그리고 이건 따로 묶어서 주시고요, 라며 꽃집에 들르기 전에 나름 예행연습이랍시고 외웠던 대사가 모조리 쓸모없어지는 순간이었다.

 

  시라유키는 꽃을 담아둔 수통 앞에 서서 눈을 부릅뜨고 꽃을 쳐다보았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꽃을 보고 있으면 잃어버렸던 이름들이 돌아오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기실 꽃집에서 미리 만들어둔 꽃다발 중 적당히 세 개를 고를 수도 있는 일이긴 했다. 하지만 시라유키는 어쩐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시라유키가 생각하기로, 이 졸업식 꽃다발은 성만 다르고 피만 안 섞였달 뿐이지 가족이나 마찬가지인 선배들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그런 선물을 무슨 냉동식품 고르듯이 대충 고를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암만 수통을 노려봐도 떠오르는 건 없었고 이러다가는 한나절이 가도록 꽃다발 세 개는커녕 하나도 사지 못할 것만 같았다. 시라유키는 점원을 부르기로 했다. 수통만 마냥 보다가 이대로 꽃집에 뿌리를 내릴 수야 없는 노릇이었다.

 

  “계심까?”

  “네, 지금 갑니다!”

 

  대답은 안쪽에서 들렸다. 곧이어 점원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

  “…….”

  “…….”

  “저, 실례지만 무슨 용무로…….”

 

  점원이 시라유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도움을 청하고자 점원을 불러놓고 시라유키는 정작 심각한 얼굴로 수통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점원의 말에 시라유키가 화급히 그녀를 돌아보니 얼굴에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에키가 시라유키를 놀려 먹을 때 종종 하곤 하는 말을 잠시 빌리자면, ‘얼굴도 무섭게 생긴 놈’이 꽃집에는 대체 무슨 볼 일이 있어서 들른 걸까, 하고 생각 중일지도 몰랐다. 

 

  시라유키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일도 이제는 익숙했다.

 

  “아, 그, 꽃 좀 사려고 하는데요.”

 

  점원은 그 말에 안심한 모양이었다. 그녀가 이내 친절한 영업용 미소를 얼굴 만면에 띠며 입을 열었다.

 

  “졸업식 때 쓰시려고요?”

 

  시라유키는 제법 힘 있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네. 소중한 선배들에게 줄 검다. 그러니까 제일 좋고 싱싱한 꽃으로…….”

  “어머, 그런 거라면 정말 잘 찾아오셨어요. 저희 집이 요 근방에서 제일 싱싱하기로 유명하답니다.”

 

  점원이 너스레를 떨었다. 제일 싱싱하기로 유명하다니! 시라유키는 그녀의 말에 요만큼의 과장도 섞여 있지 않다고 믿으며 속으로 짤막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 근방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꽃집을 검색까지 해가며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음, 혹시 생각해두신 꽃이라도 있으세요?”

  “그게 말임다……. 사실 뭐가 뭔지 잘 몰라서…….”

 

  시라유키는 뒷목을 긁적이며 말을 흐렸다. 그녀가 시라유키의 요구만을 기다리며 마네킹처럼 서 있었다. 시라유키는 허공을 쳐다보았다가 점원을 한 번 쳐다보았다가 다시 바닥을 내려다보며 더디게 말을 이었다.

 

  “그, 추천을……. 좀 해주셨으면 하지 말임다.”

 

  그러자 점원이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그래서 제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어디 보자. 졸업식 때 쓰시는 거면 역시 이거랑…….”

 

  점원이 분주하게 손을 놀렸다. 조금 전까지 안에서 줄기를 다듬고 있었는지 손끝이 파랬다. 시라유키는 그녀가 근처에 놓인 원통에서 몇 개인가의 꽃을 뽑는 것을 보았다.

 

  “일단 이건 어떠세요?”

 

  눈 깜짝할 사이에 꽃묶음이 완성되어 있었다. 시라유키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점원이 내민 것을 바라보았다.

 

  “별로세요?”

  “어, 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만들어진 꽃묶음에 너무 놀란 나머지 시라유키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점원은 그걸 ‘불만족스럽다’는 표현으로 여겼는지 다시 재게 손을 놀렸다. 좀 별로시면 여기에 이거랑 이걸 추가하고……. 꽃묶음에 하늘하늘한 꽃잎이 풍성한 꽃들이 더해졌다.

 

  “이러면 좀 괜찮으실까요?"

  

  시라유키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몇 개나 필요하시나요? 한 개만 사시나요?”

  “세 개 임다!”

  “세 개……. 그러면 너무 똑같은 것도 좀 그러니까, 다음은 이거랑 이걸…….”

 

  보인다! 점원의 머리 뒤에서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동그란 광체가! 

  

  시라유키는 어딘가 감격한 얼굴로 점원을 바라보았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시라유키의 단 하나뿐인 구원이자 꽃무더기 속에서 나타난 신, 꽃의 신 그 자체였다.

 

 

 

 

 

  <선배, 드릴 게 있슴다.>

 

  세 명에게 똑같은 내용의 라인을 보내고 시라유키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졸업식을 맞아 교내에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시라유키는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게 허리를 이리 숙였다 저리 숙였다 하며 구석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쓸데없이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있다가는 선배들이 자신을 찾지 못할 공산이 컸다. 

  

  빈자리를 찾는 일은 예상한 대로 쉽지 않았다. 여길 가도 사람, 저길 가도 사람, 어딜 가나 좁은 머리통에 심은 머리숱처럼 사람들이 수두룩 빽빽했다. 시라유키는 수색견처럼 빈자리를 찾아 헤맨 끝에 겨우겨우 앉을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늘은 아니어서 몸을 쪼그리고 앉아 있으려니 볕 아래에서 정수리가 따끈따끈하게 익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시라유키는 핸드폰을 꺼내 다시 라인을 보냈다.

 

  <화단 쪽임다>

 

  그러고는 산을 바라보는 것처럼 먼 시선으로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을 보았다. 사람들 틈 속에서 연신 번쩍번쩍하고 눈부신 카메라 후레쉬가 터지고 있었다. 물보라처럼 튀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시라유키는 문득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사진을 찍어본 게 언제였더라.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잔뜩 차려입고 사진관에 가서 거창하게 찍는 가족사진은 고사하고, 집에는 평범한 가족사진조차 몇 장 없었다. 워낙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자신만 남겨두고 집을 나간 탓이다. 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시간은 사진 몇 장으로나마 남긴 게 다행일 정도로 짧았다. 당연히 입학식 때나 졸업식 때 가족과 찍은 사진이 있을 리 만무했다. 부모님과 함께 할 미래를 꿈꾸며 어린 나이에 한푼 두푼 돈을 모아 앨범까지 사두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앨범은 수많은 페이지가 백지로 남은 채 방치되었다.

 

  자신은 그 앨범의 일부분을 닮아 있다. 그래도 베갯잇을 적시며 운 건 처음 며칠이 다였다. 여느 때처럼 자다 일어났는데 하루아침에 부모님이 사라져버린 현실은 어린 나이에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버거운 사실이었지만, 며칠 속시원하게 울고 나니 이미 벌어진 현상을 납득하는 일은 신기하게도 빨랐던 것이다.

 

  또한 시라유키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쉽게 감상에 젖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것은 다시 말하자면 과거에 매몰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한번 납득한 과거는 이내 종이 위의 활자가 되어서, 시라유키는 책을 읽어주는 것처럼 다소나마 담담하게 부모님의 얘기를 꺼낼 줄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 졸업을 맞아 가족들과 화기애애하게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봐도 그냥 그러려니 할 뿐이었다. 게다가 피를 나누지 않은 가족도 가족이라면 자신에게는 이미 세 명의 가족이 있었다. 블레이스트라는 이름 하에 하나로 묶인.

 

  그렇지만.

 

  시라유키는 들고 있는 꽃다발을 움켜쥐며 생각했다. 그 이름으로 묶이는 것도 이제 끝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시노노메, 마키, 사에키 중에서 사에키가 졸업과 동시에 밴드를 그만 두기로 한 것이다. 3학년 막바지까지 블레이스트의 베이스로서 활동하긴 했지만 그가 2학년 때 진학반 시험을 쳤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너희들과 달리 난 뭐든 ‘그럭저럭’ 잘하니까 말이야.

 

  시노노메의 입에서 "츠바사, 진학반 시험 쳤어?"라는 말이 나왔을 때 사에키는 그렇게 말했다. 시노노메의 물음은 사에키에게 뭔가를 캐묻는다거나 그를 질책하기 위해 던져진 건 아니었다. 실제로 그는 사에키의 대답을 듣자마자 "츠바사가 그러기로 결정했다면 응원할게!" 라고 했을 뿐 사에키에게 어떠한 비난조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건 마키와 시라유키도 마찬가지였다. 사에키를 포함하여 블레이스트에 속한 네 명 모두 개개인의 선택을 존중했으면 했지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며 무언가를 강요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에키는 대답을 할 당시 어딘가 속이 켕기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낯빛을 싹 바꾸더니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진학반 시험을 친 이유에 대해 말했다. 

 

  진학반 시험을 친 건, 그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너네도 알다시피, 그럭저럭 공부를 잘해도 그럭저럭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으니까. 

 

  다시 말해 그럭저럭 밴드를 해서는 그럭저럭 먹고 사는 것조차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사에키의 뼈 있는 말에 블레이스트에는 잠깐 침묵이 감돌았다. 그 말로 인해 줄곧 외면하고 있었던 현실을 자각하고 머리를 얻어 맞은 듯한 충격을 느껴서는 아니었다. 애초에 어중간한 각오로 밴드활동을 지속하고 있었던 게 아니다. 그럭저럭 밴드를 해서는 그럭저럭 먹고 사는 것조차 할 수 없다는 것쯤은 블레이스트의 멤버 모두 충분히 인지하고 있던 명제였다. 사에키라고 하여 그 사실을 몰랐겠는가. 그러니 침묵이 감돌았던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모두 실감했기 때문이다. 사에키 츠바사가 정말 블레이스트를 떠난다는걸.

 

  마지막.

 

  불유쾌한 단어가 사전 위의 활자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별로 머릿속에 담아두고 싶지는 않은 단어였기에 시라유키는 필사적으로 다른 생각을 하며 고개를 도리도리 털었다. 때맞춰 건너편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텟페이, 늦어서 미안!”

  “많이 기다렸냐?”

 

  시노노메와 마키가 차례대로 미안한 얼굴을 해보였다. 시라유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텟페이, 아무리 오래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도 그렇게 인상 쓰고 있으면 사람들이 무서워서 다 도망갈지도 모른다구? 집 지키는 도사견인 줄 알았어. 뭐, 그 덕분에 멀리서도 텟페라는 걸 한눈에 알아봤지만 말이야.”

 

  한 발짝 떨어져서 어물쩍 걸어온 사에키가 얄미운 한마디를 툭 던졌다. 시라유키는 발끈하며 대답했다.

 

  “얼굴로 놀리는 것 좀 그만둬 주십쇼!”

  “싫-은데? 텟페이, 이게 다 애정이야. 안 그래, 야마토?”

  “맞아 맞아, 애정이라구! 텟페!”

 

  시노노메가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신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까지 츠바사에게 동조하면 어떡하냐! 물론, 나도 거대 치와와……. 아니, 이 경우엔 골든 리트리버인가……. 아무튼, 개처럼 생겼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잠깐 선배, 그거 지금 욕하는 거 아님까? 명백히 욕하는 거 같지 말임다?”

  “소스케가 저렇게까지 텟페를 생각해주다니!”

 

  마키의 말에 시노노메는 정말로 감격한 눈치였다.

 

  “잠깐만요, 야마토 선배! 이게 어딜 봐서 생각해주는 검까!”

  “소스케는 정말 마음이 깊구나……. 난 기껏해야 몰티즈나 비글을 생각했는데…….”

  “너네, 무슨 이상한 소리들을 그렇게 진지하게 늘어놓는 거야? 텟페 화낸다.”

 

  이 이상한 대화의 물꼬를 튼 주범이 유일한 상식인인 척 입을 열었다. 생각해주는 척하지만 어차피 기조는 늘상 놀리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알면서도 시라유키는 화내지 않았다. 사에키가 딱히 나쁜 뜻이 있어서 이러는 게 아니라, 단지 시라유키가 '친한 후배라서’ ‘놀리기 좋으니까’ ‘아무런 악의 없이’ 저런 말을 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거기에 사에키가 이처럼 격의없이 편하게 대하는 대상은 몇 없다는 것도. 그리고 그 몇 없는 대상 중 한명이 자신이라는 것도. 

 

  일련의 사실을 새삼 상기할 때마다 항상 울컥함보다는 기꺼움이 앞서곤 했다. 물론 시라유키가 사에키에게 이런 사실을 말한 적은 없다. 부끄러운 건 둘째치고, 말했다가는 분명히 건수를 잡았다며 주구장창 놀려댔을 테니까. 

 

  “츠바사 선배가 제일 먼저 시작한 거 아님까?! ……뭐, 됐슴다. 이거나 받으십쇼.”

 

  시라유키는 들고 있던 꽃다발을 주섬주섬 꺼내보였다. 시노노메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탄성을 내질렀고 마키가 소리없이 놀라며 그 탄성을 거들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후한 반응에 시라유키는 어쩐지 민망한 기분이 들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니고 당연히 준비해야 하는 걸 준비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다. 시라유키는 머쓱하게 말했다.

 

  “선배들 졸업식이잖슴까. 그래서 샀슴다. 어제.”

  “텟페이! 뭘 이런 걸 다 준비했어. 와, 고맙게 받을게!”

  “텟페이……. 거대 치와와랑 골든 리트리버 닮았다고 한 거 사과하마. 역시 잉글리시 쉽독이…….”

  “……아니, 부탁이니 그만둬 주십쇼.”

 

  마키가 큼큼 헛기침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이거, 각자 맘에 드는 걸로 고르십쇼. 일부러 다 다르게 골랐슴다.”

  “난 이걸로 할게, 텟페이!”

  “그럼 난 이거.”

 

  마키와 시노노메는 동시에 입을 열며 손가락으로 꽃다발을 가리켰다. 시라유키는 혹시나 둘의 선택이 겹치면 어쩌지 하고 찰나 간 걱정했으나 취향이 달라서인지 다행히도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시노노메는 노란색 프리지아를 골자로 해서 금잔화와 안개꽃이 드문드문 있는 꽃다발을, 마키는 전체적으로 색감이 붉은 꽃들이 탐스럽게 피어 있는 꽃다발을 선택했던 것이다.

 

  “너네 취향 진짜 너네 같다…….”

 

  사에키가 작게 하품했다. 시라유키는 그들이 고른 꽃다발을 각자에게 건네주려다가 멈칫했다.

 

  “츠바사 선배는요?”

  “나? 나는 됐어. 그보다, 벌써 두 놈이나 동시에 골랐잖아. 텟페 네가 들고 있는 꽃다발은 세 갠데 말이야. 이러면 자연히 남는 게 내 게 되는 거지 뭐.”

 

  심드렁한 음성이었다. 시노노메가 수업시간에 졸다가 짝이 등을 쳐서 깨어난 사람처럼 퍼뜩 놀라며 사에키를 쳐다보았다.

 

  “앗, 혹시 내가 고른 게 마음에 들면 그거 줄게, 츠바사!”

  “됐어.”

  “그럼 내 거…….”

  “아니, 괜찮다니까…….”

 

  자, 빨리 너네가 고른 거 가져가. 사에키가 휘휘 손을 내저었다. 하지만 시노노메와 마키는 선뜻 꽃다발에 손을 뻗지 못하고 머뭇댔다. 잠깐이지만 사에키를 고려하지 않은 미안함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시라유키도 그들에게 선뜻 꽃다발을 건네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세 명은 어쩔 줄을 모르고 고장난 로봇처럼 버벅였다. 

 

  사에키가 답답해 죽겠다는 얼굴로 시라유키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참. ……내놔라, 텟페. 쟤네가 고른 거.”

 

  당당한 요구였다. 시라유키는 멀거니 사에키의 손만 보고 있다가 “뭐 해.” 하는 사에키의 재촉에 허겁지겁 그에게 꽃다발을 건넸다. 사에키가 시노노메와 마키가 고른 꽃다발을 받아들어 각자의 품에 친히 안겨주었다.

 

  “이게 남는 거지?”

 

  사에키가 시라유키의 품에 들려 있는 꽃다발을 빤히 보며 말했다.

 

  “넵…….”

  “저, 츠바사, 난 진짜 괜찮으니까 이거 갖고 싶으면…….”

  “됐다니까. 텟페, 나 이거 가지면 되지?”

 

  사에키는 제비 통에 든 제비를 뽑듯이 시라유키의 품에서 꽃다발을 가져갔다. 연분홍빛의 하늘하늘한 꽃잎이 겹겹이 쌓인 라넌큘러스를 중심으로, 얼핏 보면 보라색처럼 보이는 분홍빛 카네이션과 연노랑색 리시안셔스를 적절히 안배해 만든 꽃다발이었다.

 

  사에키가 꽃다발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며 시라유키는 속으로 조용히 감탄했다. 꽃다발을 만들어 준 점원에게 감사를 넘어서 경의마저 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점원은 사에키의 얼굴이라고는 한번도 보지 못했을 텐데, 어쩌면 이렇게 그에게 꼭 어울리는 꽃다발을 만들 생각을 다했을까. 꽃다발은 정말이지 사에키와 끔찍할 정도로 잘 어울렸다. 

 

  “그나저나 텟페, 사실 난 꽃 별로 안 좋아하는데.”

 

  꽃다발의 꽃을 무심히 건드리다 말고 사에키가 중얼거렸다. 시노노메가 바늘에 찔린 사람처럼 튀어 오르더니 다급하게 말을 쏟아냈다.

 

  “잠깐만, 츠바사……! 텟페이가 생각해서 챙겨줬는데…….”

 

  사에키가 시노노메를 일별했다가 무심하게 대꾸했다.

 

  “별로, 챙겨달라고 한 적은…….”

  “츠바사!”

 

  마키가 츠바사의 말을 잘랐다. 음악 외적인 부분에서 마키가 화를 내는 건 드문 일이었다. 사에키가 입술을 몇 번 더 움직였다가 별다른 말은 않고 이내 입술을 다물었다.

 

  “텟페이에게 그런 말은 좀 심했잖냐. 너.”

 

  사에키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시라유키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일도 없었다. 넷을 둘러싸고 있던 온난한 분위기가 빠르게 냉각되고 있었다. 말이 빈 자리에 침묵이 살얼음처럼 올라붙었다.

 

  “……미안함다, 선배. 선배가 꽃 싫어하는 줄 미처 몰랐슴다.”

 

  침묵을 깬 건 시라유키였다. 시노노메와 마키가 시라유키를 돌아보았다. 누가 보더라도 엉뚱한 사람이 사과를 하는 광경에 둘은 할말을 잃은 듯 했다. 사과라면 시라유키가 아니라 사에키가 해야 옳았다. 엄연히 잘못한 쪽은 사에키다. 조금 전의 발언은 준비해온 사람의 성의를 봐서라도 면전에 대고 해서는 안 되었다. 엄격한 가정교육을 받고(사에키의 말에 따르면 그랬다)처세술에 뛰어난 사에키가 그걸 모른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럼에도 사에키는 시라유키에게 미안해하기는커녕 자신의 손에 들린 꽃다발을 노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것도 엄청난 적개심을 담아서.

 

  “저, 꽃다발……. 맘에 안 드시면 버리셔도 괜찮슴다. 억지로 갖고 있지 않아도 됨다. 진짜임다.”

  “텟페!”

 

  시노노메가 무슨 그런 말이 다 있냐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시라유키는 시노노메를 향해 고개를 모로 저었다. 사에키와 정말 잘 어울리는 꽃다발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당사자가 원하지 않는 선물이란 원래 버려질 수밖에 없는 운명인 것이다. 대체로 누군가 원치 않게 갖게 된 것들은 짐덩이에 불과하니까.

 

  사에키가 시라유키를 힐끔 쳐다보았다가 한숨을 쉬었다.

 

  “……뭘 또 사과하는 건데.”

  “……”

  “됐어.”

 

  ……내가 미안. 사에키가 시선을 비스듬히 떨구었다. 

 

 

 

 

  시라유키는 식이 시작하기 전에 교문을 나섰다. 졸업 식순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얼굴이나 한 번 더 보고 헤어질까 했으나 그러면 아쉬움만 더 커질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제법 단호하게 결정했음에도 미련은 분명 남았다. 시라유키는 아직 교문이 보이는 거리에서 뒤를 돌았다. 저 멀리 아득하게, 축 졸 업 이라고 쓰인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는 게 보였다. 

 

  사에키는, 여기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간다고 했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동안 셋 모두 사에키가 대학교에 간다는 것만 알았지 거주지를 옮긴다는 것까진 몰랐다. 말을 들은 즉시 세 명은 부조상처럼 굳었다. 충격이 상당했다. 사에키가 한번도 그렇게 말한 적이 없음에도 모두들 은연중에 당연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교에 가더라도, 밴드를 그만 두더라도, 사에키는 여기에 남을 것이라고. 

 

  셋은 한동안 충격에 휩싸인 채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에키는 누구에게도 어디로 이사가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누군가 “그래서 어디로 가는 건데?”라고 묻기도 전에 “가서, 가끔 연락할게.”라고 선수를 쳤을 따름이었다. 그건 모든 대화를 종결시키는 한마디였다. 더는 묻지 말라는 암묵적인 의사표시였다. “전화번호는 그대로 둘 거지?” 시노노메가 물었고 사에키는 대답했다. 

 

  아마도.

 

  시라유키는 등을 돌리고 몇 발자국을 더 내디뎠다. 이제 교문은 보이지 않는 거리였다. 시라유키는 엄마 손에 이끌려 억지로 학원에 가는 아이처럼 마지못해 걸음을 옮겼다. 집까지 가는 걸음이 늘어진 테이프처럼 죽죽 늘어졌다. 한여름, 아지렁이가 일렁이는 아스팔트처럼 도로의 선이 무한대로 뻗어나가고 있었다. 

 

  미적미적 현관문 앞에 도착했을 때 시라유키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열쇠를 꺼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분명 주머니에 있어야 할 열쇠가 손에 집히지 않았다. 시라유키는 몇 번 더 주머니를 쑤셔 보았다가 허겁지겁 겉옷을 벗었다. 큰일이었다. 시라유키는 주머니를 까뒤집고 겉옷의 먼지를 탈탈 털었다. 바닥으로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나서 기뻐했지만 언제 넣어놨는지도 모르는 동전이 안주머니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였다.

 

  열쇠는 없었다.

 

  시라유키는 낭패감이 가득한 얼굴로 굳게 닫힌 문을 쳐다보았다. 수리공을 부를까 했다가 핸드폰이 꺼진 게 뒤늦게 생각났다.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바닥에 자주 떨어트리다보니 어딘가 크게 고장나기라도 한 건지, 최근 들어 핸드폰은 배터리가 한참 남아 있는데도 제멋대로 픽픽 꺼지곤 했다. 시라유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원 버튼을 눌러 보았지만 액정은 죽은 것처럼 잠잠했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문 앞에서 시라유키는 초대받지 않은 이방인처럼 막막한 심정이었다. 왜 진작 도어락으로 바꾸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물밀 듯이 몰려왔다. 

 

  그러나 일이 벌어진 마당에 이제 와서 후회한들 시간낭비일 뿐이었다. 열쇠를 찾아야 했다. 시라유키는 걸어온 길을 차근차근 되짚어 걸으며 꼼꼼하게 바닥을 뒤졌다. 인적이 드문 길로 걸어와서 찾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는지 열쇠는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길 위에서 뭔가 반짝거리는 일조차 없었다. 실망을 한가득 안고 2차원 선분 위의 사람처럼 바닥만 보고 걷다 보니 도착한 곳이 교문이었다. 멍한 얼굴로 교문을 바라보다가, 길 위에는 없었으니 아무래도 교내에서 잃어버린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사람을 피해 돌아다녔으니 학교에서 잃어버렸다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시라유키는 교문 안으로 발을 들였다. 가장 먼저 자신이 앉아 있던 근방부터 이 잡듯이 샅샅이 뒤지다가 모래 속에서 반짝이는 기척이 있으면 운동화 앞 축으로 운동장의 모래를 팠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오는 건 녹슨 동전이나 마모된 유리조각이나 누군가 잃어버린 머리핀 따위였고 열쇠는 아니었다. 열쇠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런 물건은 처음부터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것처럼.

 

  시라유키는 좌절하지 않고 수색의 반경을 넓혔다. 이번에는 아예 교내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다수의 사람들은 차를 타고 그들만의 시간을 즐기러 갔으므로 교내는 무척 한산했다. 열쇠를 찾으러 돌아다니느라 누군가와 부딪칠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휴일의 적막이 교내를 고르게 덮고 있었다. 시라유키는 교내를 시선으로만 둘러보며 어디서부터 뒤질까, 하다가 자전거를 보관해두는 곳으로 갔다. 누군가 자신의 열쇠를 그 사람이 잃어버린 자전거 열쇠와 착각하고 가져갔다가 안 맞는 걸 알고는 바닥에 버려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보관소에는 빠진 이처럼 자전거들이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그늘진 곳이라 발을 디디니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시라유키는 어깨를 한번 움츠렸다. 불현듯 종말을 앞둔 세계에 자신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진 기분이 들었다.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 순간이었다.

 

  “어라, 텟페. 여기서 뭐해?”

 

  시라유키는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몸을 돌렸다.

 

  “……츠바사 선배? 선배야 말로 여기서 뭐하심까……?”

  “응, 멀리서 보는데 굉장히 텟페 같은 사람이 있길래 왔는데 진짜 텟페지 뭐야!”

 

  실은 시노노메가 사에키로 변장한 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활기찬 음성이었다. 그게 아니라 이전에는 뭘 하고 있었냐고 물은 거였지만 말임다. 식도 끝났고, 선배는 집에 안 가도 되는 검까? 하고 물으려다가 시라유키는 말을 꿀꺽 삼켰다.

 

  “그래서 여기서 뭐 하는데? 텟페이.”

 

  사에키는 시라유키에게 다가가 호기심이 가득 어린 눈을 했다.

  

  “보물찾기라도 해?”

  “그, 열쇠를 찾고 있었슴다.”

  “열쇠?”

 

  사에키가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네. 잃어버려서 말임다. 그게, 집에 딱 도착했는데 주머니에 없다는 걸 그때 알아서……. 저 그거 없으면 곤란하지 말임다. 하나뿐인 열쇠라서요.”

  “뭐야. 하나뿐이라니……. 여벌 열쇠 정도는 만들어두라고.”

 

  사에키가 헛웃음을 웃으며 가볍게 핀잔을 주었다. 내심 황당해하는 눈치였다. 그야 요즘 같은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설마하니 여벌 열쇠도 없이 다니는 놈이 다 있나, 하고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못해 황당할 만도 했다.

 

  시라유키는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래야겠슴다…….”

  “그래서 설마 여길 다 뒤지려고?”

  “그게 말임다……. 아마 그래야 할 거 같지만…….”

 

  시라유키는 어물어물 말꼬리를 흐렸다. 사에키가 한숨을 쉬었다.

 

  “……텟페, 혹시 장래 희망이 사막에서 바늘 찾기야? 아니면 모래사장에서 동전 찾기?”

  “……저도 무모한 짓이라는 건 알고 있으니 놀리는 건 그만둬 주십쇼, 선배. 일단은, 모 아니면 도라는 심정으로 여기부터 뒤져보려고 했지 말임다…….”

 

  시라유키는 뒷목을 긁적였다. 해명을 하면서도 스스로가 어처구니없었다. 사에키가 흐음, 하더니 보관소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래 걸리겠지?”

  “그렇……. 겠죠.”

  “차라리 수……. 아니다.”

 

  내가 도와줄게. 사에키는 비밀스러운 장난을 꾸미는 악동처럼 속삭였다. 시라유키는 대답을 망설였다. 그가 도와준다면야 혼자 찾는 것보다는야 나을 테지만, 사에키의 말마따나 사막에서 바늘찾기나 다름 없는 일이었다.

 

  시라유키가 대답을 않자 사에키가 고개만 돌려 시라유키를 돌아보았다. 보관소에 드리워진 그늘이 사에키의 얼굴을 사선으로 덮고 있었다.

 

  “텟페이, 실은 내 도움이 엄청 간절하지? 뒤통수만 봐도 알겠던데. 텟페, 무지 내 도움이 필요한 듯한 뒤통수를 보이며 서 있었으니까.”

 

  그건 대체 어떤 뒤통수란 말임까……. 터무니없는 말에 태클을 걸려다가 시라유키는 그냥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도와준다? 응?”

 

  사에키는 벌써부터 팔까지 걷어붙이고 있었다. 시라유키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개미핥기처럼 열심히 바닥을 훑었다. 고요한 가운데 간간이 자신의 숨소리가 들리고, 아, 하는 상대방의 탄식이 들렸다가 누군가가 운동화를 끄는 소리가 날 때면 모든 소리가 일시에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소득 없는 수색작업의 연속이었다. 

 

  “그러고 보니, 텟페.”

 

  열쇠를 찾다찾다 마지막 자전거가 놓인 곳까지 갔을 때였다. 내내 허리를 굽히고 있던 사에키가 몸을 펴며 입을 열었다.

 

  “혹시 집요정이 가져간 거 아냐?”

  “집요정이요?”

 

  오리걸음을 할 때처럼 바닥에 붙어서 엉금엉금 걷다 말고 시라유키는 몸을 일으켰다. 안 그래도 슬슬 다리가 저려와 일어서려던 참이었다. 다섯 걸음 뒤에서 사에키가 허리를 좌우로 크게 돌렸다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대답했다.

 

  “왜, 집집마다 존재하는 요정 있잖아. 텟페는 몰라?”

  “……선배 판타지 소설을 너무 많이 본 거 아님까?”

 

  과학 문명의 발달 어쩌구 하는 21C에 요정이라니. 황당함을 채 숨기지도 못한 물음에 사에키가 가만히 눈을 흘겼다.

 

  “텟페이, 집에서 물건 잃어버린 적 없어?”

  “……있슴다.”

  “그거 찾다 찾다 못 찾고 포기한 적은?”

 

  도대체 뜬금없이 이런 건 왜 묻는 걸까. 생각하면서도 시라유키는 착실하게 답변했다.

 

  “그것도 있슴다.”

  “그럼 찾는 걸 포기한 그 물건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적은?”

  “……그것도 있슴다.”

  “그런데 집요정을 몰라?”

 

  시라유키는 휴, 하고 숨을 내쉬었다.

 

  “……뜬금없이 집 요정이랑 무슨 상관임까, 그게.”

  “텟페이, 그런 걸 두고 ‘집요정이 가져갔다’라고 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선배 말은……. 지금 집요정이 제 열쇠를 가져갔단 뜻임까?”

  “응.”

 

  사에키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했다. 그는 정말로 이 세상에는 집요정이 실재하며 그 실재하는 집요정이 열쇠를 가져갔다고 철썩 같이 믿는 듯했다. 눈동자가 아주 반짝반짝 빛났다. 어디서 봤더라, 저런 눈. 길거리에서 도를 믿습니까, 하며 난데없이 소매를 붙잡곤 하는 사람들이 종종 저런 눈을 보여주곤 했던 것 같은데.

  

  예고도 없이 별 희한한 소리를 듣다 보니 잠깐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시라유키는 다소 넋이 나간 얼굴로 말없이 사에키를 응시했다. 여기는 밖인데 뜬금없이 집요정 운운이 웬 말이냐며 받아칠 정신은 <21C에도 집요정은 실재하는가?>에 관한 서론을 듣고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지 오래였다. 

 

  “텟페, 너 왜 눈에 초점이 없어. 지금 내 말 무시하는 거?”

  “……그건 아님다.”

  “그럼?”

  “그냥, 정말 집요정이 가져간 거면 어쩌나 하고……. 아!”

 

  시라유키는 작게 탄성을 뱉었다. 불쑥 생각난 게 있었다.

  

  “츠바사 선배.”

  “응?”

  “혹시 핸드폰 좀 빌려주실 수 있슴까?”

 

  왜 진작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시라유키는 자책했다. 사에키의 핸드폰을 빌려서 수리공을 부르면 깔끔하게 해결 될 일이었는데. 처음부터 핸드폰만 빌렸다면, 사에키가 자신과 함께 열쇠를 찾는 수고로운 짓을 하는 일도 없었을 테다.

 

  선배에게 안 해도 되는 고생을 사서 시키다니. 시라유키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핸드…….”

 

  사에키의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울린 건 그 순간이었다. 

 

  “앗, 선배. 전화 왔슴다.”

 

  시라유키는 주머니를 가리켰다. 사에키가 주머니를 힐끗 내려다보며 “그러네.”라고 했다간 입을 꾹 다물었다. 

 

  “선배, 안 받아도 됨까?”

  “…….

 

  사에키가 받을 때까지 전화를 끊지 않을 심산인지 벨소리(사에키가 좋아하는 밴드의 음악이었다)가 계속 반복되었다. 시라유키는 자신이 다 초조한 얼굴로 주머니를 쳐다보았다. 이윽고 사에키가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네, 엄마.”

 

  ……네, 네. 끝났어요. 네. 방금 끝났어요. 사에키의 입에서 조근조근한 대답이 흘러나왔다. 그건 아주 부드럽고 온수처럼 흐르는 것이었는데, 그러나 깊은 유대감과 친밀함을 가진 자를 향한 애정 어린 대답이라기보다는 흡사 취조 당하는 사람 같은 대답이었다. 사에키가 대답을 하는 내내 시라유키는 그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굳어가는 걸 지켜보았다. 

 

  “네, 알겠……. 아, 핸드폰 꺼졌다.” 

  “헉, 그거 정말임까?”

 

  사에키가 친히 핸드폰을 꺼내서 까맣게 죽은 액정을 보여주었다. 시라유키는 약 1분 15초 전까지만 해도 존재했던 희망이 산산조각 나다 못해 가루로 변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핸드폰은 왜?”

 

  사에키가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물었다.

 

  “그게……. 수리공을 부르는 게 나을 거 같아서 말임다. 제 핸드폰은 배터리가 나갔거든요. 선배에게 핸드폰을 빌려서 전화해야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지 말임다.”

  “……저런, 그거 참 아쉽게 됐네. 내 핸드폰이 죽어서.”

  “아님다……. 선배 말대로 열쇠를 찾는 게 무모한 짓이었슴다. 다른 사람에게 빌려보기라도 해야겠지 말임다.”

  “텟페이가 빌리려고 들면 삥 뜯는 것처럼 보일걸?”

  “…….”

  “그냥 오늘은 집에 들어가지 말고 나랑 어디 가서 같이 잘래?”

 

  사에키가 태연자약하게 제안했다. 시라유키는 사에키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네?” 하며 되물었다가 뒤늦게 사색이 되어 소리를 질렀다.

 

  “그, 그그그, 그게 무슨 말임까 선배! 아니, 잠, 아니, 무슨 말, 말임까?!”

 

  지진계에 기록되는 그래프처럼 목소리가 마구 흔들렸다. 사에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텟페이, 왜 그렇게 놀라? 순수한 의도로 물어본 건데.”

 

  시라유키의 반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양 사에키가 고개를 갸웃했다. 시라유키는 제 정수리 위에서 김이 뿜어져 나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사에키의 말 한마디에 순식간에 A-Z까지의 과정을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진행시킨 결과였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시라유키는 죄를 저지른 사람처럼 고개를 푹 떨구었다. 사에키와 시선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가까운 강으로 달려가서 자진입수나 하며 제 안의 어둠을 정화하지 않으면…….

 

  “텟페?”

 

  시라유키는 용수철처럼 펄쩍 튀어 올랐다.

 

  “그, 아, 네! 알고 있슴다. 물론, 순, 순수한! 뜻이라는 것쯤은 저도 암다! 그치만 아직 밤도 아니고, 그쵸. 그렇지 않슴까, 선배.”

  “어차피 집에도 못 가잖아. 아직 열쇠도 못 찾았고, 수리공도 못 부르고…….”

 

  사에키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까 어디론가 가버리자. 사에키는 아까부터 농담인지 진담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말만 하고 있었다. 시라유키는 쭈뼛대며 대답했다. 

 

  “……저, 그런데 선배는 집에 안 가 봐도 검까. 방금 전화도 왔는데…….”

 

  사에키가 말을 잘랐다.

 

  “놀러 간다는 전화야.”

  “네?”

  “뭐, 다 그런 거지. 이를 테면 어른의 사정이랄까. 출국 수속 밟기 전에 전화했대. 대단히 눈물 나는 사랑이지 않아?”

  “…….”

  “텟페, 방금 한 말은 농담. 맛있는 거 해놓을 테니 적당히 놀고 들어오래. 자, 열쇠나 찾자. 우리 텟페는 열쇠 없으면 출국 수속도 못 밟고 꼼짝없이 밖에서 자야 하니까 말이야.”

 

 

 

 

 

  이게 차라리 보물찾기 게임이라도 하는 거라면 좀 나을 텐데. 둘이 다음으로 선택한 장소는 실내였다. 만약 실내에서 잃어버린 거라면, 들어가는 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가서 찾아봐야 한다고 사에키가 주장했기 때문이다.

 

  둘은 엄중한 수사를 나온 형사처럼 구석구석 꼼꼼하게 살피며 복도를 걸었다. 복도의 창틀 위로 폭약 같은 햇빛이 튀어올랐다.

 

  “선배 가면, 무지 허전할 거 같슴다.”

  “베이스 자리는 비워두고 셋이 활동해, 그럼. 거기에 투명인간인 내가 있다고 생각하고.”

  “진짜 그럴까요…….”

 

  시라유키는 침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바보야. 농담을 왜 진지하게 받고 있어?”

  “……베이스.”

  “응?”

  “팔 겁니까?”

 

  발소리가 멎었다. 

 

  이윽고 사에키가 왜 그런 것을 질문 하냐는 듯한 눈으로 시라유키를 보았다. 서늘한 얼굴이었다. 사에키의 입에서 흘러나올 대답이 두려워졌다. 시라유키는 쫓기듯이 입을 열었다.

 

  “사실 말임다, 선배가 아닌 베이스는 상상이 안 감다. 왜냐면, 제가 아는 베이스는 선배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어, 선배 거, 펜더죠. 비싸지 않슴까. 좋은 거 아님까. 그 소리, 좋아했슴다. 커뮤니티에 올리면, 왜, 누구나 탐내기도 하고, 사겠다는 사람도 많고…….”

 

  시라유키는 두서없이 말을 이어 붙였다. 사에키는 어차피 밴드를 그만 둘 것이다. 그는 진학반 시험을 쳤고 대학교에 가서 평범한 수학을 하겠다고 했다. 그럭저럭 공부를 잘해도 그럭저럭 먹고 사는 데는 지장 없으니까. 예전부터 사에키에게는 남들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면모가 있었다. 

  

  블레이스트는 오늘로 끝이다. 될 수 있는 한 오래 부정하고 싶었던 문장이 선명하게, 박을 입힌 것처럼 떠올랐다. 

 

  “……그러니까, 아님다. 안 파셨음 좋겠슴다. 아니, 아님다……. 아무것도.” 

 

  시라유키는 어영부영 말을 맺었다. 타지에 가서도 그가 베이스를 볼 때마다 이곳을 기억해주었으면 했다. 블레이스트를 기억해주었으면 했다. 그리고 자신을……. 하지만 시라유키는 구체적인 형체로 남은 기억들이 때때로 사람을 얼마나 괴롭게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쓰일 일 없는 베이스가 먼지를 뒤집어 쓴 모습을 볼 때마다 괴로워할지도 몰랐다. 애매한 추측이었다. 그러나 심증이 있는 추측이기도 했다. 시라유키는 블레이스트를 그만두고 타지로 간다고 했을 때의 사에키가 어떤 얼굴을 했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쁨과 착잡함이 마블링처럼 섞인 얼굴이었다. 

 

  사에키는 말이 없었다. 입술은 여전히 꾹 다물린 채였다. 시라유키는 선고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초조하게 속으로 1분을 셌다. 사에키는 1분이 넘어가도록 묵묵부답이었다. 사람이 없는 복도는 무척 조용했고, 모든 소리를 거세한 것만 같은 고요함은 이내 불안함을 불러 일으켰다. 시라유키는 문득 덜커덕 가슴이 내려앉아 입을 열었다.

 

  “……꽃다발, 진짜 버리셔도 됨다.”

  “…….”

  “……화나신 거 같아서 말임다.”

 

  사에키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안 버려. 그냥, 꽃다발은……. 결혼기념일 따위가 생각나서 기분 나빴던 거뿐이야.

 

  그때 시라유키는 뒷목을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것뿐이라고. 사에키가 스스로에게 변명하듯이 같은 말을 덧붙였다. 목소리가, 먼지처럼 부유했다가 기도를 타고 들어와 숨이 막혔다.  

 

  시라유키는 얼어붙은 것처럼 서 있다가 간신히 한마디를 뱉었다.

 

  열쇠는……. 천천히, 찾을까요.

  ……마음대로 해.

 

  그래서 시라유키는 열쇠를 천천히 찾기로 했다. 

 

 

 

 

 

  ……선배들이 갑자기 다 가니, 기분이 되게 이상함다.

  이상하긴 뭐가.

  그냥, 막 울렁거리고, 토할 거 같고……. 멀미가 남다.

  뭐야 그게, 차멀미도 아니고.

  실은, 선배가 베이스를 칠 때마다 꼭 그런 기분이 들었슴다.

  …….

  ……막, 허전한데.

  텟페.

  어쩐지, 선배가 계속 생각날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들지 말임다.

  그거, 그러면 안 돼. 텟페.

  

  착잡한 목소리가 발치로 뚝뚝 떨어졌다. 시라유키는 사에키를 돌아보았다. 

 

  왜 안 되는 검까?

 

 사에키가 천천히 입술을 움직였다. 

 

 네 세계가 이게 전부가 아니잖아.

 

  “…….”

  “……텟페, 손 줘.”

  “네?”

  “손.”

 

  시라유키는 다소 벙찐 얼굴로 있다가 순순히 손을 내밀었다. 사에키가 이게 어딨더라, 하면서 주머니를 뒤지다가 “아!” 하며 뭔가를 꺼내들었다.

 

  “여기.”

  “…….”

 

  열쇠였다.

 

  “……자. 실은 아까……. 화단에 있는 거, 주웠어.”

 

  사에키가 손바닥 위에 열쇠를 올려놓았다. 툭하고 손바닥 위로 떨어지는 쇳덩이가 외형에 비해 무겁게만 느껴졌다. 시라유키는 그런 열쇠는 생전 처음 본다는 것처럼, 혹은 아, 이런 열쇠가 있었지, 하는 것처럼, 집요정이 가져갔다고 믿어지는 물건이 어느 날 먼지덩이와 함께 구석에서 튀어나올 때 사람들이 아, 그런 물건도 있었지, 하는 것처럼 사에키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열쇠를 보았다. 열쇠는 흙먼지 속에서 뒹군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것처럼 말끔한 모양새였다. 은빛의 열쇠가 손바닥 위에서 빛나고 있었다. 시라유키는 홀린 듯이 열쇠를 보았다. 

 

  “선배.”

  “왜. 찾았는데도 안 줬다고 욕할 거냐?”

  “…….”

 

  사에키는 전화를 내켜하지 않았다. 꽃다발을 받고는 결혼기념일이 생각나서 기분이 나빴다고 했다. 베이스를 팔 거냐는 물음에 화를 냈다.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으니 진학 한다는 말을 대수롭잖게 하면서도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았다. 열쇠는 무척 말끔했고, 사에키는,

 

  같이 있지, 않겠냐고……. 어디론가, 가버리자고…….

 

  “……그, 괜찮으시면 집에서 자고 가도 되지 말임다.”

 

  ……선배랑 헤어지고 싶지 않아요. 사에키가 눈을 가늘게 떴다.

 

  “야, 아까부터 무슨 꿍꿍이냐?”

 

  설마 고백? 사에키가 호들갑을 떨며 깔깔거렸다간 농담이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시라유키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헤어지고 싶지 않은 건 사실이었고…….

 

  “……야?”

  “…….”

  “…….”

  “맘대로 생각하십쇼…….”

 

 사에키가 입을 합 다물었다. 얼굴이 불그스름했다. 

 

 

 

 

 

  대학교에 가면, 독립해도 좋다고 했어. 

 

  돌아가는 길에, 사에키는 담담하게 말했다. 

 

  웃기는 일이지. 내가 어떻게 되건 아무런 상관도 없는 주제에, 신경도 안 쓰는 주제에……. 이제 와서 독립을 허락하고 말고 할 게 어디 있단 말이야. 그래도 난 나오고 싶었어. 거기에 있으면 숨이 막혔거든. 그래서, 나오고 싶어서……. 뭐, 그랬다는 얘기.

  ……어디로 이사 가는지는 안 알려주실 검까?

  응. ……너네가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면 귀찮다구. ……그리고 나, 여기에 계속 있을 마음은 없으니까. 알려주면, 계속 있어야 할 것만 같잖아.

  

  말하며 사에키는 몸을 움츠렸다.

 

  집요정 말임다.

  응.

  우리집의 집요정은 내가 아니었을까 하고.

  그게 무슨 말이야?

  부모님이 말임다, 결혼반지를 두고 가셨거든요.

 

  길게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허둥대며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보다가 안방을 살폈을 때였다. 안방은 어수선하게 어질러져 있었는데 어디로 보나 급하게 세간을 챙겨 나간 흔적이 역력했다. 어린 나이에도 상황을 이해하고 현실을 깨닫는 건 순식간이었다.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다가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로 갔더니 세면대 위에 여자의 손에 딱 맞춘 듯한 결혼반지가 있었다. 손을 씻느라 잠깐 빼둔 것을 챙기는 일도 잊고 급하게 도망친 모양이었다. 100m 달리기를 했을 때처럼 가슴이 쿵쿵 뛰었다.

 

  엄마는 늘 결혼반지를 애지중지하며 그걸 항상 약지에 끼고 다녔다. 어쩌다 실수로 잃어버린 날에는 반지를 찾아 사방을 헤맸다. 잃어버렸으리라고 여겨지는 장소로 돌아왔다가, 한동안 떠나지 않고 그 주변만 뱅뱅 맴돌았다.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 몰래 지갑에서 돈을 빼내는 아이처럼 반지를 집어 들고 왔다. 이제는 뭔가를 몰래 들고 온다고 해도 뭐라 할 사람도 없는데, 그런 사실조차 잊고……. 

 

  방으로 돌아온 뒤에도 가슴은 계속 뛰었다. 심장이 고막을 뚫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문을 꼭 닫고 문에 기대 서서 심호흡을 했다. 그 짧은 거리를 이동하는 새에 혹시라도 반지가 손에서 빠져 나갈까봐 꼭 쥐고 있었던 주먹을 천천히 폈다. 엄마가 잃어버린 반지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기뻤다. 사라지지 않아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고는 처음 반지를 집어 들었을 때 했던 생각을 따라 자신만이 아는 장소에 반지를 숨겼다. 책장, 정확히는 언젠가 사두곤 책장에 비스듬히 세워두었던 앨범의 옆자리였다.

 

  더는 찾는 사람도 없는 집에서, 사실은, 매일매일 눈을 감고 뜰 때마다 기대했다. 혹시나, 어쩌면……. 기적처럼, 결혼반지를 두고 갔다는 걸 기억해내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선배도 그러고 싶었던 거겠죠.

 

  사에키로부터의 대답은 없다. 그래도 시라유키는 괜찮았다. 묘하게 시선을 피하는 듯한 얼굴을 보며 그저 생각할 뿐이었다. 역시 돌아가면 여벌 열쇠를 하나 만들자. 그리고 하나는 츠바사 선배에게 줘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