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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1

memo2020. 12. 21. 21:49

암룡 1인 모드 드디어 깸 ㅠ ㅅ ㅠ

 

이오 포 없었으면 절대 못 깼을 거 같음....^^ 

내일부터 룰렛인데 많은 거 안 바라니까 룰렛에서 클리리 먹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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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4

memo2020. 11. 24. 19:42

생일 축하한다.... 나야.... 

원래 친구들이 생.파 해주기로 했는데 이 시국이라.... 응.... 

 

케이크 선물 받았는데 oooo제과점 케이크는 왜 이렇게 단지 모르겠다

하지만 맛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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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20-21

memo2020. 11. 21. 01:43

명성 냠냠
드디어 엘황 깼다0ㅁ0) 황제님 저 이제 하산하겠습니다. 

 

 

  엘황 드디어 깼다. 남들은 물라우만 있으면 쉽다는데 나는 우리집 물라우가 있어도 너무 어렵더라(심지어 자동 투력이 4만 넘는데도....). 풀고모+암나인+풀라플+물라우+풀슬란으로 3트 정도 하고 빌빌거렸는데 지인이 풀올가랑 같이 써야 한다구 조언해줬다0ㅁ0) 그래서 4트는 풀올가 넣어서 갔다. 풀올가가 백퍼 확률로 20% 행감 해주는 덕분에 순조롭게 진행되나 싶었는데, 황제 피 6만 남은 상태에서 암나인 턴이 돌아왔고 소울은 7개 차 있어서 물라우로 행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어쩌지 하다가 방무뎀 있는 풀슬란+암나인으로 버스트 쓰고 피 2만 깎은 다음에 황제 턴 오자마자 지피로 34517 깎여서 이김....

 

  단언컨대 암나인은 효자입니다. 암나인 영입하라고 권해준 소*님 고마워요. 사랑해요. 지피 짱 지피 최고.  

 

  아무튼 드디어 졸업했어.... 한 건 좋은데 이제 뭐하지. 이것이.... 허무?(ㅋㅋㅋㅋ)

  갑자기 토xx누 진엔딩 이후의 ㅅ1ㅋ1가 이해가기 시작함(진짜 이해한다는 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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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플란] 어느 날 그의 신이 말했다

2차/적왕사2020. 11. 20. 20:12

 

 

  칼리안은 밤을 틈타 플란츠에게 왔다. 체르밀 궁 4층의 널찍한 소파에 앉아 미동도 없이 그저 어둠만을 응시하고 있던 플란츠는 오셨네요, 하고 자신을 반기는 칼리안의 목소리를 들음으로써 그가 왔음을 알았으나 정작 칼리안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기별없는 방문에는 형태도 없었다. 플란츠가 미간을 찡그리며 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살펴보아도 눈앞에는 완전한 어둠만이 정적인 생물처럼 놓여 있을 따름이었다. 칼리안과 어둠 사이에는 구분이 없었는데 그가 어둠 속에 완전히 녹아든 게 아니라 어둠이 그를 남김없이 삼킨 것만 같았다. 그 사실에 플란츠는 놀라움보다 불쾌함을 느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아우님은 예전의 추억을 잊지 못한 모양이군. 문 쪽에 힐끗 시선을 두었다 거두며 이제는 카밀론의 주인이 된 이에게 그리 말했을 뿐이었다. 편히 들어올 수 있는 문을 두고 굳이 테라스를 통해 4층으로 올라온 칼리안의 행동을 지적한 것이다.

 

  조금 전의 일이다. 체르밀 궁 4층에 다다르자마자 플란츠는 레릭을 물리고 문을 닫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칼리안을 만나는 게 오랜만이었고, 그 만남에 타인이 함께하는 걸 칼리안이 원하지 않을 거라는 데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닫아둔 문은 지금도 오래된 석문처럼 굳건했다. 그러니 칼리안이 예전처럼 3층에서 4층 테라스로 올라왔을 것이라고 유추하는 건 플란츠에게 고기를 먹는 것보다 간단한 일이었다.

 

 

  그러는 형님도 이곳을 찾아주셨잖습니까.

  아우님이 그러기를 원하셨으니.

 

 

  플란츠는 이제 와서 무슨 새삼스러운 말을 하느냐는 얼굴로 칼리안의 말을 받았다. 란델과 자신이 왕도를 떠난 이후에도 4층과 5층을 정리하지 않은 건 종종 이런 만남이 성사되기를 바랐기 때문이 아니었느냐고.

 

  칼리안은 침묵으로 플란츠의 말을 긍정했다. 한번 카밀론의 주인이 결정되면 왕위 다툼에서 밀려난 이들은 군말 없이 체르밀을 비워야만 하는 게 카이리스의 법도였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왕위 다툼에서 밀려난 왕자들일지라도 예외는 없었다. 왕도는 타고나기를 선하게 태어난 이조차 잘못된 길로 접어들기 쉬운 곳이었다. 왕위 다툼에서 밀려난 왕자들의 이름이라도 사고 싶어 하는 가문은 어디에나 있었다. 따라서 비록 카이리스의 드높은 탑에 유폐되는 결말만은 피했을지언정 밀려난 이들은 왕도 밖에서 새로운 삶을 구가해야만 했다. 그러나 칼리안은 자신의 형제들이 그런 결말을 맞기를 원치 않았다.

 

  궁을 온전히 비워내면 왕도 내에 아무도 기거하지 않는 삭막한 장소가 하나 늘어나잖아요? 그러면 도저히 살맛이 안 날 것만 같습니다.

 

  그런 되도 않는 이유까지 들먹이며 체르밀을 예전처럼 남겨두길 원했다. 몇몇 귀족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체르밀은 온전하게 살아남았다. 란델과 플란츠는 그들의 생애를 통틀어 유일하게 이 부분에서만 생각이 일치했다. 두 사람 모두 칼리안이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여겼다. 칼리안은 무언의 힐난에도 개의치 않았다.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남겨두는 편이 좋을 것 같아서요. 그저 왕도를 떠난 뒤에도 각자가 사용했던 방을 보존해 두겠노라고 태연하게 선포했을 따름이었다. 플란츠는 그것이 결코 돌아오지 않을 이를 위한 고향을 마련해두는 일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미련한 짓이었다. 돌아오지 않을 이를 위해 장소를 예비해두는 것은 부질없고 소득 없는 자기만족에 불과했다. 칼리안이 그 사실을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러므로 말도 안 되는 이유까지 들어가며 부득불 체르밀을 보존하려 하는 칼리안의 태도는 플란츠를 의아하게 했다. 칼리안은 자신의 만족만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는 자신을 위해 살기보다는 타인을 위해 살았다. 원치 않는 호의가 폭력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의아함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플란츠는 이내 하나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어리광을 부리는군.

 

  그리고 플란츠가 왕도를 떠나던 날, 칼리안은 표정 변화 하나 없는 얼굴로 플란츠에게 물었다. 저를 사랑하세요? 맥락 없는 질문이었다. 그럼에도 플란츠의 발을 붙들기에는 충분했다. 아니. 모든 걸 들여다보는 듯한 눈동자를 앞에 두고 플란츠는 그렇게 대답했다. 평생 들켜서는 안 되는 부도덕한 비밀을 들킨 기분이었다. 칼리안은 피어나는 꽃처럼 웃으며 말했다.

 

  형님이 체르밀에 종종 들러주시면 기쁠 겁니다.

 

  그 순간 플란츠는 한 가지를 깨달았다. 칼리안의 그 행동은 단순한 자기만족이나 어리광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확인하고자 하는 행동이었다는 사실이다. 동시에 플란츠는 한 가지를 결심했다. 카밀론의 주인이 브리센 후작의 협력을 구한다면 언제든지 응할 것이었으나 플란츠 룬 카이리스를 부른다면 답하지 않으리라. 플란츠는 공식적인 행사나 부름이 아니고서야 일절 왕도 쪽으로는 발길도 주지 않았다. 그를 사적으로 만난다면 속수무책으로 이끌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마음을 묻고 그날의 대답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런데 이처럼 완고히 굴었던 플란츠가 칼리안과의 사적인 만남을 위해 체르밀까지 오게 된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한 시간 전, 얀도 아닌 아르센이 브리센 후작 저까지 와서 편지를 건넸다. 밀랍으로 단단히 봉해진 편지봉투에는 카이리스 왕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누가 장난이라도 친 것처럼 봉투 한 귀퉁이에 그려진 검은 고양이는 덤이었다. 르메인과 칼리안, 둘 중 누가 보낸 편지냐며 새삼스레 물을 것도 없었다. 한 귀퉁이의 검은 고양이는 이 편지가 누구의 손에서 보내진 것인지를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표식이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다. 칼리안이 카밀론 궁에 입성한 이후, 미련 없이 왕도를 나와 브리센 후작 저로 들어간 플란츠에게 칼리안은 종종 편지를 보내오곤 했다. 플란츠는 칼리안이 편지를 통해 또 같은 질문을 해올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잘 지내고 있느냐는 사소한 안부인사에서부터 자꾸 그렇게 제때 밥 안 챙겨먹으면 키 안 큰다는 건방진 걱정에 이르기까지 희고 푸른 새들이 물어다주는 편지는 태반이 시시콜콜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왕도에서 새를 통해 보내는 편지는 누군가 중간에서 가로채 볼 위험이 크다. 그런데도 칼리안은 그런 위험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위험천만한 행위를 지속해나갔다. 오죽했으면 플란츠의 곁을 충실히 지키고 있는 레릭이 이래도 되는 거냐며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올릴 정도였다. 플란츠는 짧게 답했다.

 

  됐어.

 

  신경 쓸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칼리안은 위험을 좌시하는 부류들과는 달랐다. 카밀론에서 브리센 후작 저로 보내지는 편지를 가로채 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카밀론의 주인이 플란츠를 걱정하고 또 염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제2왕자가 왕도를 나가 브리센 후작 저로 들어간 뒤에도 3왕자가 여전히 그의 뒤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상상력이 풍부한 귀족들은 그러한 앎을 통해 ‘카밀론이 주인이 왕도 밖으로 나간 제2왕자를 걱정하는 척 하면서, 실은 그가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도록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다’는 엉뚱한 결론을 도출하게 될 터였다.

 

  귀족들은 명분이 없고 승산이 없는 싸움에는 발을 들이지 않는 겁쟁이들이다. 칼리안은 여봐란 듯이 보내는 시답잖은 편지를 이용하여 불순한 반란의 싹을 미연에 잘라내고 있었다. 왕도의 평화를 지키는 일에 쓸데없이 손을 더럽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는 실로 우아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전서구만 고생시키는 짓을 잘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플란츠는 편지를 그만 보내라는 말만은 하지 않았다.

 

  플란츠가 칼리안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으므로 무수한 다정과 염려는 언제나 새들을 통해 날아들었다. 그랬기에 아르센이 직접 후작 저까지 찾아와 편지를 건넸을 때는 아무리 플란츠라 해도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와 자신은 빌헬름 관에서나 얼굴을 맞대면 충분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아르센은 에우리아가 부탁한 마법사협회의 일 때문에 변경으로 가던 중 후작 저에 들렀다고 했다.

 

  꼭 부군단장님 혼자만 보셔야 합니다. 아르센은 신신당부를 하며 편지를 건넸다. 비단 아르센의 말이 아니었더라도 플란츠는 그럴 생각이었다. 카이리스의 문양을 보았을 때부터 그 편지가 이때까지 받아 온 시시콜콜한 것들과는 다름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봉투가 밀랍으로 봉해졌다는 것은 그 안에 편지를 전해주는 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사실이 담겨 있다는 뜻이었다.

 

  플란츠는 아르센이 돌아간 뒤 아무도 없는 방 안에서 혼자 봉투를 열었다. 짐작했던 대로였다. 편지에는 칼리안의 필체로 평소와는 다른 내용이 쓰여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플란츠가 예상했던 것과는 달랐다. 반역을 도모하는 자들이 있는지 살펴봐 달라는 부탁도, 제온의 움직임에 대해 묻는 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칼리안의 성격을 드러내듯, 균일한 간격을 유지하며 가지런히 놓인 글자들은 플란츠가 이때까지 보아 온 모든 것들과 동떨어진 한 문장을 구성하고 있었다.

 

  형님,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그 한 문장이 전부였다. 자신이 ‘사라졌다’고 하는 편지를 보내 온 사라진 필자라니 실로 황당무계했다. 플란츠는 글자를 한 획 한 획 뜯어가며 한참이나 문장을 들여다보았으나 칼리안의 의도는 쉬이 짐작이 가지 않았다. 난생 처음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거대한 미지에 맞닥뜨린 듯했다. 논리성을 결여한 조악한 문장이었음에도 칼리안이 무료함에 질린 나머지 질 나쁜 장난을 친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다. 가끔씩 묘하게 사람의 신경을 긁는 말을 재미있는 농담이랍시고 던지거나, 하는 사람만 즐거운 장난을 겁 대가리 없이 치긴 했어도 이런 식은 아니었다.

 

  모든 것이 모호했지만 두가지만은 확실했다. 칼리안의 신변에 무슨 일이 생겼다. 혹은 곧 생길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르렀을 때, 플란츠는 그간의 완고한 결심이 무색하게 입궁을 결심했다. 그 짧은 문장을 통해 칼리안에게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또 벌어질 것인지 유추하기란 어려웠으나 어찌되었건 자신이 사라졌다고 하는 칼리안을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일주일 전 변경을 시찰하다 입은 부상 때문에 아직 몸이 성치 않으셔서 안 된다는 레릭의 만류에도 플란츠는 결심을 돌리지 않았다.

 

  달리는 말에 박차를 가하며 왕도로 가는 내내 수많은 추측과 가설이 나무가 자라나 가지를 뻗듯 사방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제 발로 떠났던 곳에 다시 도착할 때까지도 좀처럼 만족할 만한 결론에는 다다를 수 없었다. 하여 레릭을 물리고, 문을 닫고, 아무도 없는 방 안에 홀로 앉아 칼리안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도 생각하는 일은 단념하지 않았다. 한번 의문점이 생기면 스스로가 납득하고 만족할 수 있는 결론에 이르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않는 게 플란츠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그러나 생각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오직 칼리안만이 명확한 해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확고해져갈 뿐이었다. 그러니 만약 후작 저로 들어간 뒤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았던 자신을 보기 위해 이런 편지를 보낸 거라면 실로 약아빠졌다는 생각마저 들 무렵, 칼리안이 찾아왔다. 기척 없이 나타난 칼리안이 손에 들고 온 해답은 계속해서 생각한 일이 바보 같다 여겨질 정도로 맥 빠지는 것이었다.

 

  제가 어느 날 갑자기 투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완전히 투명해져서 목소리만 남았어요.

 

  사라졌다는 말에는 처음부터 그것 이상의 의미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법인가.”

  “아……. 아뇨, 형님이 뭘 생각하시는지는 알겠는데, 그건 아닙니다.”

 

 

  마법에는 조예가 깊지 않은 플란츠였지만 일단 맡은 직책이 있는 만큼 마법사들이 자주 사용하는 마법이라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가장 눈에 익은 것이 얼음 마법이고, 그 다음이 투명 마법이었다. 그들은 종종 해서는 안 되는 짓을 몰래 행하고 싶을 때 몸을 투명하게 만드는 마법을 쓰곤 했다. 아르센이 기어코 플란츠를 본 딴 얼음 동상을 만들어서 빌헬름 관 외곽에 세워놨을 때도 그랬다. 따라서 너도 마법을 쓴 게 아니냐고 한 것이었지만 칼리안은 첫머리를 애매하게 끌며 그 말을 부정했다.

 

 

  “그게, 일단 저는 투명마법을 쓸 줄도 모를 뿐더러 마법을 썼을 때처럼 즉각적으로 몸이 사라진 것도 아니어서요.

 

 

  칼리안은 자신의 몸이 일주일 전부터 서서히 투명해졌다고 주장했다. 플란츠에게 건넬 편지를 작성하기 시작한 건 그 즈음부터로, 오늘 아침엔 눈을 뜨니 자신의 몸이 완전히 사라졌기에 아르센을 사사로이 불러 전서구 역할을 부탁했다고 했다. 얀이 알면 엄청나게 걱정할 거 같아서 얀에게는 최대한 몸의 이상을 숨겼다는 말은 덤이었다. 플란츠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칼리안의 염려를 긍정했다. 그 새끼 코끼리라면 필경 발을 동동 굴렀으리라.

 

 

  “그래서, 헤르츠 경과 아버지께만 물어 보았는데 두 사람 다 처음 보는 현상이라 하던데요. 원인을……,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어떻게 된 거냐고 물으신다면…….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장난해? 그리고 그걸 왜 이제야.”

  “아, 일단 좀 앉을게요. 형님 옆에. 그래도 되죠?”

 

 

  어차피 보이지도 않는데 칼리안은 일일이 허락을 구했다. 열다섯 명이 편히 앉아도 될 만큼 널찍한 소파에서 플란츠는 몸을 옆으로 슬쩍 비켜 앉는 것으로 허락을 대신했다. 곧이어 실례하겠습니다, 아, 오른편이요. 지금 앉았어요.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오른편에서는 어떠한 무게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플란츠는 슬쩍 옆을 보았다. 누군가 앉아 있다면 무게로 인해 그 주변이 조금은 꺼져 있는 게 정상일 텐데도 칼리안이 앉은 자리는 구김 하나 없이 말끔하기만 했다. 매일같이 체르밀 궁을 청소하는 고용인들의 손이 닿은 이후로는 아무도 손대지 않은 것처럼.

 

  칼리안이 이 세상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플란츠는 미간을 찡그렸다.

 

 

  “이렇게 앉으니까 좋네요. 형님은 제가 보이시지 않겠지만……. 제가 기별 없이 들이닥쳐서 화나신 건 아니죠?”

  “됐어. 그보다 대답.”

 

 

  기별 없이 오기는 플란츠도 마찬가지였다. 왕도에 가야겠다는 결심이 서자마자 아르피아 궁에 연락도 하지 않고 달려오기부터 했으니. 플란츠는 자신이 화낼 계제가 아니라는 뜻을 한마디로 압축하며 칼리안의 대답을 종용했다.

 

 

  “왜 이제야 말했냐고 하시면……. 심려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

 

 

  어디 한번 무슨 변명을 하는지 좀 들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던진 말이었는데 플란츠는 할 말이 없어졌다. 사려 깊은 아우님이 형님에게 심려 끼쳐드리고 싶지 않아서 알리지 않았다는데 그 눈물겨운 마음을 탓할 수야 없었다. 칼리안은 거짓말에 서툴렀고 플란츠는 저 말이 거짓이 아님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래서 헛웃음을 한번 웃었다. 그랬다가 문득 짚이는 게 있어 이번에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처음에는, 이러다 곧 괜찮아지겠지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리 심각한 것도 아니었고, 그냥 별빛이 깜박이는 것처럼 잠깐 투명해졌다가 금세 원래대로 돌아오곤 했으니까요. 안일했죠. 그런데……. ……전, 사실 형님이 오시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심려 끼칠 거 같아서 얘기 안 했다던 놈에게, 그렇다면 끝내 숨길 것이지 이제야 얘기한 이유는 뭐냐고 물었는데 칼리안은 갑자기 다른 소리를 했다. 부자연스럽게 말을 돌리는 티가 역력했다. 왜 갑자기 말을 돌리는 거냐며 잡고 늘어질까 하다 플란츠는 형 된 도리로 한번만 못 본 체해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울리지도 않게 곤혹스러운 얼굴을 한 채 시선을 모로 비낄 칼리안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건방지게.”

  “그야, 그동안은 계속 저를 멀리 하셨으니까요.”

 

 

  저물녘처럼 쓸쓸한 음성이었다. 이번에도 플란츠는 말문이 막혔다. 너무 티 나게 행동했다는 자각은 있었다. 자신보다는 못할지언정 그래도 똑똑한 아우님이니 자신이 그를 고의적으로 피하고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하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칼리안이 어떤 말도 하지 않았으므로, 공식 석상에서 만날 때마다 꼬박꼬박 자신을 ‘브리센 후작’이라고 부르며 어떠한 내색도 하지 않았으므로 그다지 염두에 두고 있지 않은 줄로만 알았다.

 

  ……알면서도 눈을 감아 준 것일까.

 

 

  “그런데 제가 사라졌다고 하니 이렇듯 달려와 주시니……. 이것 참 기뻐해야 할지, 아니면 슬퍼해야 할지 감이 안 오는군요. 이럴 줄 알았다면 종종 제가 위험해졌다는 편지라도 보낼 걸 그랬나 봐요.”

  “짖지.”

  “……실은 형님이 오시기 전에, 잠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이라면 이대로 하늘에 녹아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요.”

 

 

  칼리안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플란츠는 자신의 끝을 얘기하는 칼리안에게서 그 어떤 허무도 감정의 고양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사람은 희망이 남아 있을 때 처절해진다. 아직 희망이라는 이름의 미련이 남아 있을 때에나 자신의 절망적인 미래를 언급하면서 격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자신의 끝을 언급하는 칼리안은 마치 타인의 비극을 읽어 내려가며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이 같기만 했다. 결코 바람 불지 않는 호수의 수면처럼 그는 지극히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우님은 카밀론 궁에서 개를 키우겠다고 하시더니 아무래도 자신이 개가 된 모양이군.”

  “너무하시네요. 생각만 했을 뿐입니다. 정말 그런 것도 아니고, 애초에 저는 아직 살려야 할 목숨도, 짊어진 목숨도 많아서 열심히 살아야 한단 말이에요. 이런 식으로 끝을 낼 수는 없죠. 하지만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입니다. 이대로 아무런 방도를 찾지 못해서 제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말이에요.”

 

 

  칼리안의 입에서 나오는 마지막은 플란츠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기껍지 않은 미래가 목전까지 들이닥치는 선득한 감각에 플란츠는 그 말을 끊으려 했다. 내가 이제는 마법을 배울 필요가 없을 거 같다고 해서 얘가 또 이렇게 돌아버린 건가. 그렇다면 다시 배우겠다는 말로 이 270도 돌아버린 놈의 사고가 완전히 돌아버리기 전에 원래대로 돌려놓는 게 좋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러나 칼리안이 뒷말을 잇는 게 더 빨랐다.

 

 

  “마지막으로 보는 게 형님 얼굴이었으면 했습니다.”

  “……자꾸 짖어.”

 

 

  모래알을 삼킨 것처럼 목 안쪽이 텁텁했다. 칼리안이 가볍게 웃었다.

 

 

  “형님도 아시다시피, 잠든 신은 변덕스러우니까요.”

 

 

  주신 세렌티. 칼리안의 입에선 기어이 그 이름이 튀어나왔다. 대륙의 내로라하는 마법사인 앨런 마나실조차 원인을 모른다고 했다. 인간의 이해를 아득히 뛰어넘은 현상에 대해 주신 세렌티의 힘이 미쳤기 때문이라고 추측하는 건 무척 타당하고 합리적이었다. 그 외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기실 칼리안이 앨런 마나실의 이름을 언급했을 때부터 플란츠도 세렌티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 거대한 재난 같은 이름을.

 

 

  “……잠깐만. 설마.”

 

 

  심려를 끼칠 것 같아서 연락하지 않았다고 한 놈이 그 말이 무색하게 편지를 보냈다.

 

  형님, 제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어느 날 자신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하는 이상한 편지를.

 

  플란츠는 모든 편지를 쌓아두고 있었다. 보관해두고 있었다. 정확히는 간직하고 있었다. 일부러 눈을 돌리고 못 본체하려 애를 썼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보내지는 편지에 담긴 감정의 결마저 무시할 수 있는 성정은 못 되었다. 그러니 그렇게 간직한 편지는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사라졌다고 하는 이상한 편지는 그렇게 간직한 편지의 가장 위에 놓이게 될 것이다. 어딘가 이상한 문장을 보고 그의 명석한 두뇌는 위화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칼리안이 신의 간섭으로 ‘잊히게’ 되었을 때 자신은,

 

  ……그를 찾으려 하겠지.

 

 

  “……객사한 고양이 찾는 집사라도 되라는 건가.”

  “…….”

  “내게 바라는 게 그런 거냐고.”

 

 

  세렌티는 한번 칼리안의 이름을 세계에서 지운 적이 있었다. 그의 존재를 영영 사라지게 한 적이 있었다.

 

  칼리안은 점점 투명해지던 자신의 몸이 영영 보이지 않게 된 순간 그 일을 떠올렸을 것이다. 마지막을 직감했을 것이다.

 

  칼리안의 대답은 느리게 흘러나왔다.

 

 

  “……예. 만약 제가 이 시대에서 영영 사라지게 된다면 말이에요. 그러니까 세렌티가 제 존재를 또다시 지워낸다면 말입니다. 아무리 형님이라 할지라도 저를 잊으실 테지만, 그 편지만은 남지 않을까 해서요.

 

 

  칼리안의 말은 장막 너머에 존재하는 인물의 생을 읊는 듯이 단조롭게 이어졌다.

 

 

  ”그러면 형님은 후작 저에 왜 이렇게 많은 편지가 쌓여있나 하시겠죠. 그 편지를 한번쯤은 확인하려 하실 거예요. 무엇도 잊지 않는 형님의 기억에 없는 것들이니. 그러면, 기억에 없는 필체로 쓰인 편지에서 위화감을 느끼고 이 시대에서 사라진 저를 떠올리려 애써 주실 테죠. 형님은 명민한 분이시니까요.”

  “너.”

  “그렇게 저를 기억해주시겠죠, 형님은.”

 

 

  —그 꽃, 시나스타라는 이름이래요. 저는 강물 따라서 바다로 가는 꽃 말고, 별이 되어서 하늘로 가는 그 꽃이 더 좋아요. 시나스타라는 그 꽃이 더 좋아요.

 

  —이유요? 이유……. 바다는 너무 넓잖아요. 그러면 강물 따라서 바다로 가는 꽃은 사람들 기억에서 잊힐지도 몰라요. 하지만 하늘로 가면, 하늘을 볼 때마다 계속 기억해주실 테니까요. 아니에요, 달리 이유가 있어서 한 말은 아니었어요. 그냥, 그냥 저는, 잊히는 건 슬프다고 생각해서요. 아니에요, 정말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언젠가의 기억이 기포처럼 올라왔다. 플란츠는 숨을 삼켰다. 

 

 

  “……아우님은, 성격이 나쁘군.”

 

 

  숨이 막힐 듯한 공기 속에서 꺼내놓을 수 있었던 말이라곤 그게 전부였다. 그것 외에는 다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기분 탓인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또렷하게 들리던 목소리가 가물거리는 듯했다. 이런 게 마지막일 리가 없다. 그랬으면서도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아주 잠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칼리안이 꼭 그때처럼 자신을 보고 있을 것만 같아서. 형님……, 하며 자신을 올려다보던 그 날처럼. 플란츠는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뜨며 숨을 토해냈다.

 

 

  “필요 없어.”

 

 

  플란츠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한번 더 강하게 내뱉었다.

 

 

  “필요 없다고. 안 할 거니까. 네 마지막을 추억하는 일 같은 거.”

 

 

  그런 미래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네가 자신을 추억해달라고 하며 용서를 구할 필요도 없다.

 

 

  “약속했을 텐데. 고양이를 기르겠다고.”

 

 

  사위가 죽은 것처럼 고요했다. 플란츠는 속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말했다. 아주 잘 기를 거야.

 

 

  “……그러니 그 전에 네가 사라진다는 생각도, 안 해. 그리고 고양이를 지키는 건 주인의 몫이야.”

 

 

  어느 순간부터 아무런 말도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느꼈으면서도 플란츠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난 아우님을 사라지게 둘 생각이 없거든.”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 호수에 불꽃을 띄우는 일 같은 건 없을 것이다. 분명 존재했던 이의 이름을 잊는 일도 없을 것이다. 무엇도 잊지 않을 것이다. 추억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이나 지키지 못하는 결말 같은 건 없을 것이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저를 사랑하세요?

 

  고요한 어둠 속에서 왜인지 그날의 질문이 떠올랐다. 사람의 속내를 파헤치는 듯한 새빨간 눈동자가 떠올랐다. 자신을 한없이 무르게만 만들었던 사랑스러움이 떠올랐다. 돌아왔으면 했다. 지금이라면 한번 회피했던 그 말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을 숨 막히게 만들고, 그리하여 끝내 그로부터 자신을 격리하게 만들었던 그 얼굴이 사무치게 그리운 지금이라면.

 

  언제부턴가 알게 되었다. 자신을 바라보는 칼리안의 눈에 담긴 감정을. 명석한 두뇌는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부분에서마저 플란츠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건 모든 걸 한꺼번에 휩쓰는 재난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늦봄의 비처럼 발치에서부터 느리게 온 몸을 적셔오는 애정이었다. 사람을 다정하게 수몰시키는 애정이었다.

 

  그러한 애정은 플란츠에게 기껍기 이전에 두렵기만 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지켜야 할 것처럼 소중했지만, 플란츠는 형체 없는 것들을 지켜내는 데는 자신이 없었다. 그런 것들은 지켜본 적이 없었다. 지키는 법을 누구에게도 배우지 못했으므로 그러했다. 태어난 이후로 받은 애정이라고 해봤자 너를 위한다는 미명 아래 플란츠를 폐허로 만드는 폭력 같은 사랑뿐이었다. 그의 하나뿐인 모친이 그에게 하사한 애정이란 겨우 그 정도였다. 물론 그가 자신에게 준 것을 사랑이라 칭할 수 없다는 것쯤은 플란츠도 알았다. 그게 기실 사랑의 탈을 쓴 학대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따라서 한 번도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사랑이라고 믿고 싶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마땅히 주어져야만 했던 것조차 받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괴로운 일이었으므로.

 

  그런 점에서 칼리안은 플란츠의 처음이었다. 그는 플란츠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애정을 주고자 했다. 그래서 플란츠는 도망쳤다. 눈을 돌리고 뒷걸음질 치는 것을 무엇보다도 혐오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살고 싶었으니까. 숨이 막혔으니까. 건네지는 감정이 두려우면서도 매혹적이어서, 자꾸만 그 감정에 기꺼이 수몰되려 하는 자신을 견딜 수가 없었으니까.

 

  칼리안이 그 사실을 몰랐을까.

 

  몰랐을 리가 없다. 그랬음에도 칼리안은 욕심내지 않았다. 그는 본래 플란츠에게 무엇도 강제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만 아쉬워 할 뿐이었다. 그렇게 플란츠가 떠난 이후에도 체르밀 궁 4층을 보존하고, 편지를 보내고, 공식 석상에서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플란츠의 장단에 맞춰 그를 브리센 후작이라 부르며 자신의 욕심을 억눌렀다.

 

 

  “그럴 필요 없는 거였어.”

 

 

  너는 좀 더 욕심내도 되는 사람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돌아와.”

 

 

  ……칼리안. 이름을 부른 건 사람의 영혼은 이름에 실재한다는 구시대적인 생각이 문득 뇌리를 스친 탓이다. 감감한 어둠을 향해 플란츠는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되뇌었다. 신을 향해 간구하거나 기도하듯이, 어울리지도 않게 간절하고 절박하게.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눈앞의 어둠이 희미하게 일렁이기 시작하는 것만 같았다. 플란츠는 오른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기적처럼, 분명 아무것도 없는 허공인데도 무언가 손끝에 걸리는 듯했다.

 

  저 끝에서부터 희번하게 빛이 번져오고 있었다.

 

 

 

*

 

 

 

  “……그래서, 어떻게.”

  “저도 잘은 모르겠지만, 잠든 신도 사랑에는 약한가 봐요. 사랑의 마법 만세예요. 그죠?”

 

 

  플란츠는 날카로운 눈으로 칼리안을 쳐다보았다. 칼리안이 생글생글 웃으며 플란츠의 시선을 비스듬히 피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칼리안은 돌아왔다.

 

  플란츠의 손 끝에 무언가 걸린 순간, 저 끝에서부터 번져 온 빛이 체르밀의 4층까지 이른 순간, 칼리안의 모습이 허공에서부터 천천히 나타났던 것이다.

 

  플란츠는 그답지 않게 당황했다. 칼리안이 돌아왔습니다, 하고 입을 뗄 때까지도 플란츠는 정물처럼 있었다. 형님. 칼리안이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손을 은근슬쩍 맞잡아 왔을 때에야 마법에서 깨어나듯 정신이 돌아왔다.

 

  형체를 가진 칼리안이 눈앞에 있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몸이 서서히 투명해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칼리안 본인도 잘 모른다고 했다.

 

  목소리마저 사라졌을 때, 저는 아주 깜깜한 곳에 있었어요. 아무 것도 없는 허무……. 사후 세계가 있다면 꼭 그런 곳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형님이 절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서……. 이게 진짜 뻔한 전개 같긴 한데 말이에요.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서, 돌아가야지, 돌아가서 저 바보 같은 브리센 완두콩을 안심시켜 줘야 하는데 하고 돌아보니까, 거기에 빛 같은 게 있어서……. 와. 이게 돌아오네요.

 

  설명이랍시고 해준 건 그게 다였다.

 

  뭐냐고 그게.

 

 

  “……너.”

  “화나셨습니까?”

  “돌아오자마자 짖네.”

  “멍!”

  “…….”

 

 

  이거 아무래도 내 동생 아닌 거 같은데. 뭔가 바뀐 거 같은데.

 

 

  “있죠,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뭐.”

  “제가 좀 더 욕심내도 되냐고 물어본다면, 그래도 된다고 대답해주세요. 강요하는 건 아니에요. 아닌데, 그냥……. 그래도  된다고 대답해주세요.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돌아온 건 사랑의 힘 같은 거라고.”

 

 

  자꾸 짖는데.

 

 

  “아시겠습니까? 형님은 저를 실재하게 하는 사람이에요.”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섭섭할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누가 들으면 슬퍼하겠군.”

  “히나나 키리에, 아버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저를 살아가게 하는 사람들이고요, 형님은 둘 다 하시는 분이고.”

 

 

  하여튼 눈치는 빨랐다.

 

 

  “…….”

  “그러니까, 제 곁에 계셔주세요. 이번에는 도망치지 마시고.”

  “왜.”

 

 

  칼리안이 저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미 짐작이 가고 남았음에도 구태여 물었다. 개인이 한 사람의 세계를 아무 대가없이 소유해도 되는 것인가. 왕도를 떠나기 이전까지 플란츠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난제였다. 한참을 고민하다 플란츠는 칼리안이 카밀론에 들어설 즈음하여 조금 다른 답을 내렸다. 떠나야겠다고. 카밀론의 주인은 온 세상에 빛이 두루 비치는 시간에도 빛 하나 바래지 않는 찬란한 별이 될 것이다. 이제 그의 세상은 모두의 것이라 믿었다. 어느 한 사람이 소유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 믿음에 한치의 의심도 없었기에 주제넘은 욕심을 부리려 하지도 않았다. 넘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이끌림은 불가항력적이어서, 자신에게 고해지는 애정에 두려움을 느꼈으면서도 자꾸만 그에게로 쏟아지려 하는 마음을 주워 담느라 급급했다. 엉망진창이었다. 그래서 뒤돌아보지 않고 도망쳤지. 이대로는 못 살 거 같았으니까. 그런데.

 

 

  “절 사랑하시잖아요?”

 

 

  칼리안이 뻔뻔한 물음을 태연하게 내뱉는다. 네가 좀 더 욕심을 내도 괜찮다고 해서 욕심을 내는 나에게 너도 좀 더 욕심을 내보라고 한다. 정말이지 사람을 난처하게 만드는 사랑스러움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이라면 답을 돌려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막상 제대로 된 답을 하려니 어쩐지 머쓱한 기분이 들어 플란츠는 다른 말을 혀 끝에 올려 놓았다.

 

 

  “그러니까, 아우님은……. 지금 카밀론을 지키는 개가 필요하다는 소린가.”

 

 

  칼리안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정정했다.

 

 

  “틀려요. 이건 애원이에요.”

 

 

  그러더니 덧붙인다. 정확히는 사랑 고백이고요.

 

  아……. 그 말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던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플란츠는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2019.05.26.

장르 첫 글은 언제 봐도 부끄럽다. 힘줘서 써보려다가 기력이 없어서 급하게 마무리 지은 글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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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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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번호는 따로 문의해주세요.

2020.11.10

music2020. 11. 10. 20:02

 

노래 너무 내 취향임 ㅠ_ㅠ9

작업할 때는 역시 잔잔한 게 좋아0ㅁ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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