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9.13

memo2020. 9. 13. 01:52

 

요즘 하는 것: 로오히 / 사퍼

이주 전의 나: 로오히 그렇게 열심히 안 할 거 같은데....(아주 웃기고 있죠)

요즘의 낙: 신비상인 물건 바뀌는 거 확인하기

 

재활 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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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발론 연맹은 특임대의 처우를 신중하게 결정했다. 온 대륙에 악명을 떨친 제국의 일원 중에서도 특임대는 특별했다. 그들이 전선의 최전선에 서서 사랑하는 이들의 삶을 유린하고 약탈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솔하는 이가 다름 아닌 제국의 여덟 검이라 불리는 조슈아 레비턴스였던 까닭이다. 개개인의 감정은 정치적 올바름에 선행하였고 조슈아 레비턴스의 처우를 결정하는 순간에 이르러서는 언쟁에 가까운 토론이 오갔다.

 

  임시적으로 신병을 확보하고 있는 로드의 중재도 이때만큼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당연했다. 온 대륙에 해방의 물결을 가져 온 아발론 연맹의 주축이 되어 모두가 악이라 규정한 것을 단죄했다 한들, 아발론의 기원에는 상실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발론의 군주는 다른 누구보다도 그 사실을 잘 알았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뜻이 이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를 감히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의 발언이 이 자리에 모인 이들 중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전후처리를 논하는 회의는 휴의와 개의를 거듭하였다. 종내 연맹원들의 의사가 향한 곳은 알드 룬의 제4왕녀였다. 제국의 손아귀에 사랑하는 이들을 잃지 않은 자가 없다지만, 하루아침에 일가족이 몰살당한 참극은 그들에게도 제법 비극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세상이 정의라 규정한 이들이 망국의 왕녀를 주시했다. 연맹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일원이자, 테레즈 해방군을 이끌며 갈루스 서부 각지에서 민중들에게 희망과 승리를 안겨주었던 이는 고요하게 가라앉은 시선을 들어 대답했다. 

 

 

  제국의 압제와 부당한 폭력 하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일어난 이들이 있습니다. 제국의 치하에서 우리의 자유와 터전을 무자비하게 앗아간 이들이 사람으로서 사고하게 되었을 때, 나의 동지들이 비로소 획득하게 되는 가장 큰 복수의 기회를 앗아가서는 안 되겠죠.

 

 

  그런 뒤 그는 숨을 한번 참았다 내쉬며 말을 맺었다.

 

 

  저는, 조슈아 레비턴스에게 사람으로 살 것을 말했습니다.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의 음성은 갓 피어나는 봄처럼 온화했으나 그 저변에는 도저한 감정이 얼음처럼 서려 있었다. 연맹원들은 멸망한 나라의 왕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기민하게 읽어내었다. 짐승이 사람이 되어 수치와 죄를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자신의 죗값을 삭감해줄 이도 자신의 죄를 고해할 이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전쟁은 미시적으로 보면 언제나 개인의 비극이었으므로 용서는 어느 때고 당사자의 손끝에서만 허락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국이 짓밟고 지나간 곳곳마다 추모의 형태를 상실한 추모가 넘치고 있었다.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피 묻은 손을 닦아낸다 한들 그 손에 묻은 피는 영영 지워지지 않을 것임이 자명했다.  

 

  연맹원들은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의 의지를 엄숙하게 존중했다. 그날의 회의는 전후 발생한 갈루스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군정을 실시하되, 각 연맹에서 사람을 인선하여 갈루스의 각지에 임시 행정관을 두자는 결론으로 끝이 났다. 군정이 끝난 뒤의 자립을 위해 지역마다 자치위원회를 조직할 수 있게끔 독려하고, 군정과의 조화를 모색하는 일은 다음 번 회의의 의제가 될 터였다. 

 

  회의가 파한 후에도 알드 룬의 제4왕녀는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모두가 물러났음을 확인하자마자 그는 망설임 없는 기색으로 로드에게 '요구'했다. 아발론에서, 조슈아 레비턴스를 받아주었으면 해요. 로드는 그 말을 할 때의 바네사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를 읽어보려 했지만 도무지 읽어낼 수가 없었다.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은 구태여 드러낼 필요가 없는 것들을 감추는 데 능숙한 이였다. 

 

 

  저는 그에게 사람으로 살 것을 요구했어요. 그가 그렇게 되기까지, 아발론이 그 장소가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로드는 그의 요구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실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에게 아무런 이유가 없다 해도 수락했을 것이었다. 바네사의 요구는 그의 존재만으로도 당위를 지녔다.

 

  아발론은 조슈아 레비턴스의 신원을 정식으로 인계받았다. 얼마 안 가 조슈아 레비턴스의 머리 위로는 단두대의 칼날이 아니라 군주의 검날이 내리닿았다. 한때 제국에 충성을 맹세했던 이는 어딘가 체념한 듯도 하고 가라앉은 듯도 한 얼굴을 하며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게 희미한 죄책감의 발로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 모습을 보며 로드는 문득 생각했다.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은 이 자를 영겁토록 증오하지는 못하리라.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이 자신의 몸을 바쳐 막아내려 했던 것들이 조슈아 레비턴스의 역사에서는 이미 종결되어 있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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