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0.27

music2020. 10. 27. 01:19

 

 

극락정토에서 헤어나오는 법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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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7

memo2020. 10. 27. 01:10

 

 

  우리집 불효자를 소개합니다(정령석 9개)

 

나에게 왜 이러는 거니 크롬아 

 

 

 

 

  아니 난 정말 깊생 안 하려고 했는데.... 그치만.... 

 

  위무선은 언제나 자신이 있을 곳을 필요로 했고(위무선은 의식하지 못했고 동시에 그럴 의도도 없었겠지만, 은연중에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 받을 수 있는 곳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매 순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장소에 존재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전생에서는 그들이 필연적으로 한 번 어긋날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 위무선은 1. 남망기가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고 2. 당시 위무선을 필요로 했던 곳은 막 재건을 마친 연화오나 난장강이었지 고소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망기의 말은 위무선에게 닿지 않고 '돌아가자'라든가 '돌아오라'는 말이 위무선에게 어떤 영향도 줄 수 없었던 것이다....ㅠ_ㅠ

 

  사실 난 4권의 고백씬이 상당히 뜬금없다고 생각하는데 깊.생을 하면서 과몰입 하면 마냥 뜬금없는 것만도 아니다. 전생에선 내내 닿지 않았던 남망기의 말(이는 마지막에 남망기가 위무선을 난장강으로 데려다 놓았을 때, 남망기가 영력을 불어넣으면서 전심을 다해 고백한 그 모든 말이 물거품처럼 흩어진 것에서 종지부를 찍었다)이 이번 생에서는 위무선에게 닿았거든.

 

  여러 일을 겪으며 위무선은 남망기가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자신 역시 남망기를 그만큼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을 이번 생에서 마침내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위무선은 겨우 손에 거머쥔 이 해답을 또다시 자신의 과오로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자기가 하려고 했던 일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그르치고야 만' 그때와 같은 결말을 또 맞이하고 싶진 않은 것이다. 뜬금없어 보이는 고백씬 같긴 한데 이러한 마음의 발로라고 생각하면 납득이 감. 그러니까 그만큼 남망기가 소중한 거지. 그 결과 이번에 위무선은 꺼지라고 하는 대신 서로가 서로의 곁에 있음을 실감할 수 있도록 꽉 안아달라고 한다. 

 

   "너와 평생 야렵하고 싶어."라는 말은 정말 분위기도 뭣도 없는 투박하기 그지 없는 고백이지만, 위무선의 행적을 돌이켜보면 이만큼 가슴 절절한 고백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이게 바로 과몰입 오타쿠의 말로인 거지). 위무선은 언제나 자신이 있을 곳을 필요로 했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 곁에, 바로 그 장소에 존재했다. 두 번의 생을 살면서.... 위무선은 마침내 확신하게 된 것이다. 남망기의 곁이야말로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라는걸. 고소도 아니고, 연화오도 아니고, 그 어디도 아닌 남망기의 곁 말이다.

 

  아니 그래서 말이야.... 13년 간 한 사람만을 찾아 헤매던 인물에게 "나 여기에 있어!"라는 대답을 돌려주는 게 너무 좋다고.... 13년 간 악몽 속을 헤맨 인물에게 "여기에 있어."라는 대답을 돌려주는 게 너무 좋다고.... 서로가 서로의 곁에 있다는 걸 확신시켜주는 그 대답이 너무너무너무 좋다고.... 본편 마지막에서 시선이 떨어지지 않은 것도 너무너무 좋다고 남망기는 위무선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니까.... 전생에서는 강제로 시선이 떨어져야만 했으니까....(와 이거 다시 생각하니 정말 너무 좋은데)

 

  그래.... 결국 좋다는 얘기가 하고 싶었다.... 원래 좋아하게 되면 좀 구구절절 떠들어보기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그렇지만 사실 이젠 떠드는 게 너무 무섭다 그래도 여긴 개인 티토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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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2

music2020. 10. 12. 22:49

 

 

지금 들어도 진짜 너무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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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12

memo2020. 10. 12. 22:18

 

갓기천사 데려옴 ㅠ_ㅠ9

 

데려와서 초월도 시켜 줌 영웅 란에서 계속 눌러 보고 있음 어쩔 수 없습니다 그는 cv가 (이하생략)

빨리 골드 벌어서 6초 시켜줘야지.... 나인깅.... 가난한 로드지만 최고로 만들어줄게....

 

 

 

배율 120%에서 가장 가독성이 좋은 블로그(아닐 수도 있음)

etc 란에도 글 하나 정도는 올리고 싶은데 올리고 싶다는 생각만 한 달째임 

 

 

더보기

 

  행운의 여신이 자신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던 순간은 과연 언제였을까? 조슈아 레비턴스는 자신의 삶에 필요 이상의 연민을 느끼는 부류와는 달랐으나, 그렇다고 자신의 삶에 아무런 감흥이 없는 것만은 또 아니었다. 그 결과 오늘에 이르러 조슈아 레비턴스는 자신의 삶을 한 단어로 정리하는 데 성공했다. 불운.

 

  사람이 일평생 거머쥘 수 있는 행운에 총량이라는 게 있다면, 그의 삶에 찾아온 행운이란 발치에 고인 물 정도였다. 흠뻑 젖는 건 당연 불가능하거니와 목마른 개가 목을 축일 만큼도 되지 않는 극히 미미한 양이었다. 처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조슈아 레비턴스는 새삼스레 장탄식을 늘어 놓으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진 않았다. 그냥 이 한마디를 속으로 삼켰을 뿐이었다. 운이 없군. 그러고는 찰박거리며 물장난을 칠 수조차 없는 메마른 땅 위에 서서 가만히 지난날을 돌이켜 보았다. 그러자 두 가지 사실이 명쾌해졌다. 정말로 운이 없는 삶이었으며(그러나 운이 없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 감회를 주지 못했다), 불행은 언제나 일정한 전조를 지닌다는 것이었다.

 

  아발론의 기사들이 난데없이 들이닥친 건 이 같은 사실이 그의 안에서 명쾌해진 직후였다. 아름다운 여신은 타국의 로드를 갈루스로 이끌었고 제국을 와해시킨 건 신의 섭리가 아닌 인간의 의지였다. 불운한 남자는 초상능력이 억제 된 수갑을 차고 선 채 황제의 죽음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것이 시대가 그에게 부여한 의무였다. 조슈아 레비턴스는 단순히 뭉개진 살과 꾸덕한 피로 돌아간 황제를 보며 생각했다. 제국을 무너뜨린 이들의 습격에는 일정한 전조가 있었다. 불행은 아니었다. 

 

  불운한 남자가 자신을 엄습해오는 불행을 직감한 건 시일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그날 조슈아 레비턴스는 파견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왕성의 복도에 깔린 융단을 따라 걷던 중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들의 모습이 보였다.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과 샬롯 그레이스였다.

 

  조슈아 레비턴스는 응당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길을 돌아가려 했으나 그 순간 조슈아 레비턴스에게 허락되지 않은 선율이 그의 귓가를 사로잡았다. 너무나도 아름답고 평화로운 선율은 그 언젠가 전쟁의 여신을 베어내고 그의 수급을 높이 치켜들고자 했던 전 특임대대장을 징벌하는 듯했다. 조슈아 레비턴스는 약속처럼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오직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의 이름 자에만 존재하는 국가의 노래가 조슈아 레비턴스의 귓가를 할퀴고 지나갔다. 조슈아 레비턴스는 발걸음을 돌리지 않았다. 

 

  그늘진 눈이 저만치 멀리에 있는 망국의 왕녀를 고용히 응시했다. 연주를 하는 동안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의 얼굴엔 다양한 감정이 깃들었다가 금세 저물기를 반복했다. 조슈아 레비턴스는 개중 몇을 읽었으며 몇은 읽어내지 못하였고 또 몇은 감히 읽어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 바네사 테레즈 알드 룬의 얼굴에 미미하게 미소가 감돈 순간이었다. 조슈아 레비턴스는 제 가슴이 별안간 뛰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왜 그런지 그 이유는 도시 알 수가 없었으나 단 한가지만은 명확했다.

 

  불행은 언제나 일정한 전조를 지닌다. 자신은 제대로 저항해보지조차 못한 채 패배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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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플란] 성례

2차/적왕사2020. 10. 12. 15:44

 

  - 악마 칼리안이 보고 싶어서 충동적으로 쓰고 치움. 시대 배경x

 

 

 

  소리는 정확히 네 번 울렸다.

 

  이 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누구도 네 번이나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어린 시종은 문을 열기를 망설이며 서성였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저택에 누군가 찾아오다니. 어린 시종은 명령을 받고 수행하는 일에만 익숙했을 뿐 스스로 뭔가를 결정하고 행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았다.

 

  저택의 사람들은 누구나 그랬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모두가 저택의 부속품에 불과했던 탓이다. 커다란 저택에서 자아를 갖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저택의 총 관리인인 시종장과 주인이 유일했다. 그러니 문을 열지 말지를 결정해줄 수 있는 것도 시종장과 주인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시종장의 목숨은 어제 바닥에 떨어진 참이었다. 저택의 비밀을 함구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택의 주인인 실리케 브리센은 사교계 모임에 참석하느라 마차를 타고 저택을 떠난 지 오래였다. 선택은 온전히 어린 시종의 몫이었다.

 

  집을 드나드는 실리케의 손님들은 늘 문을 세 번 두드리곤 했다. 그것이 저택을 방문하는 자들 간의 사소한 규칙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문 건너에 있는 사람은 그런 사소한 규칙을 까먹은 중요한 손님일 수도 있었다. 외진 데까지 귀한 걸음을 해주신 분을 소득 없이 돌려보냈다가는 어떤 사달이 날지 몰랐다.

 

  시종은 저번에도 실리케를 찾아 온 보안청의 고위 간부를 빈 손으로 돌아가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실리케는 밀랍으로 주조된 것처럼 아름다운 얼굴에 명화 같은 미소를 띠며 그의 뺨을 올려붙였다. 먹여주고 재워준 은혜를 이런 식으로 갚다니. 실로 짐승만도 못하구나. 어린 시종은 순식간에 오른편으로 돌아간 얼굴을 감싸 쥐며 머리 위로 쏟아지는 폭언을 묵묵히 감내하였다. 실리케는 무척이나 화가 난 듯했지만 목소리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조차 없었다. 오물 같은 순간 속에서도 그는 여전히 이 저택의 가장 높은 곳에서 피어나는 고귀한 르니에리였다.

 

  그때 실리케의 손찌검에 터져나간 뺨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물지 않았다. 그래도 그만하면 운이 좋게 끝난 일에 속한다는 걸 어린 시종은 알고 있었다. 이를 테면 길을 가다가 1플로린에 상당하는 금화를 주운 격이었다. 동시에 시종은 자신의 인생이 무수히 많은 불운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것 또한 알았다. 행운의 여신은 그 순간 자신의 손을 떠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었다.

 

  이번에는 겨우 뺨을 올려붙이는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실리케는 멍청한 짓을 세상에서 가장 혐오했다. 만약 문 건너에 있는 사람이 보안청의 고위 간부처럼 중요한 손님이라면, 이번에는 그 귀하다는 상아로 만든 조각상 너덧 개가 자신의 머리를 과녁 삼아 날아들지도 모를 일이다.

 

  문 하나를 두고 생이 긴박하게 오갔다. 어린 시종은 바싹 말라오는 혓바닥을 침으로 축였다. 건너편에서 한 번 더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선택의 시간이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고 문고리를 잡아 당겼다.

 

 

  “안녕하세요. 좋은 오후군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나요?”

 

 

  어린 시종이 문을 열고야 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데는 1초면 충분했다. 문 밖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물든 청년이 서 있었다. 청년은 구시대의 유물로 생각되기 쉬운 수수한 로브를 입고 있었는데, 후드를 푹 눌러쓴 탓에 청년의 얼굴을 알아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때늦은 직감이 시종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눈앞의 청년은 결코 중요한 인사 따위가 아니며, 지금 이 순간 문을 연 행동은 그가 평생에 걸쳐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수 만 가지 일 중 하나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길게 그림자가 드리워진 얼굴 아래로 선명한 붉은 빛을 띠는 입술이 수려한 곡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아, 문 닫지 마시고.”

 

 

  시종의 얼굴에 드리워진 낭패감을 읽어낸 것인지, 청년은 말로 선수를 치며 닫지 말 것을 종용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청년은 시종의 주인이 아니었다. 구태여 그 말을 들을 필요는 없었다. 공연한 짓을 했다는 생각에 시종은 다시 문을 닫으려 했다. 하지만 문이 완전히 닫히는 것보다 문틈 사이로 청년이 손을 집어넣는 것이 더 빨랐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청년의 손이 문 틈 사이로 끼어드는 것을 본 순간 시종은 자신도 모르게 문고리를 붙든 손에 힘을 주었다. 문을 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닫히려는 문을 붙들기 위해서였다. 시종은 이대로 문을 닫으면 사람의 손이 으스러진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강요된 침묵 속에서 목도해야만 했던 참혹한 광경은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었다. 청년이 벌려진 문틈 새로 얼굴을 가까이 하며 입을 열었다.

 

 

  “잘하셨습니다. 이제 당신의 주인에게 가서 칼리안이 찾아왔다고 말해요. 그러면 날 들여보내라고 할 겁니다.”

 

 

  부탁과 명령의 경계가 흐릿한 문장이었다. 어린 시종은 머리를 다쳐 이해력을 상실한 사람처럼 눈만 깜박였다. 그때 당장에라도 폭풍우가 올 것처럼 어두컴컴했던 하늘 위로 한줄기 빛이 번쩍였다. 지면을 온통 태울 것처럼 환하고 강렬한 빛이었다. 그 한순간의 빛이 그림자 속에 숨은 청년의 눈동자를 세상에 드러냈다.

 

  한 쌍의 붉은 눈이 흔들림 없이 이 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흡사 까맣게 죽은 피를 응고시킨 것만 같은 눈이었다. 그 눈을 마주하며, 시종은 저택의 2층에서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도련님을 떠올렸으나 잠시였다. 유령이나 그림자는 주인이 될 수 없다. 집에는 주인이 없었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어린 시종은 악마에게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었다.

 

  청년이 고개를 살짝 모로 기울였다.

 

 

  “그냥 열어도 됩니까?”

 

 

  시종은 두어 번 고개를 주억거렸다. 주인님이 안 계셔서요. 청년이 나직한 탄성을 뱉었다. 아하. 불길한 눈이 가늘게 뜨였다. 역시.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말이 과연 무슨 뜻인지 시종이 생각해보기도 전에 청년이 저택 안쪽으로 들어섰다.

 

 

  “응접실로…….”

  “아니, 됐습니다.”

 

 

  청년은 응접실로 안내하겠다는 시종의 말을 자르며 한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럴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그간 이 저택을 찾아 온 손님들에게 했던 것처럼 청년을 일단 응접실로 모신 뒤 예를 갖춰 대접하려 했던 시종은 그 말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저, 그럼 제가 뭘…….”

  “아무것도.”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는 것인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인지 시종은 알 수 없었다. 시종이 둘 중 어느 말인지 가늠해보는 사이 청년은 리놀륨 바닥 위를 미끄러지는 듯한 걸음으로 걸어갔다. 망설임이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태도였다. 마치 이 저택의 주인이라도 되는 양 거침없이 뻗어나가던 걸음은 이윽고 나선형으로 된 계단 앞에 멈추어 섰다. 청년의 뒤를 불안한 얼굴로 좇던 어린 시종도 청년의 뒤에 멈춰 섰다.

 

 

  “여기, 올라가 보고 싶은데.”

  “위, 위요?”

  “네. 안 되나?”

 

 

  어린 시종은 당황한 얼굴을 했다. 청년이 은근슬쩍 하대를 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어린 시종은 청년과 나선형 계단의 끄트머리를 번갈아 보았다.

 

  2층에는 어느 날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하루하루 죽을 날 만을 기다리는 저택의 도련님이 있었다. 어린 시종은 그가 정확히 어떤 병에 걸렸는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그 병에 걸린 이들이 연신 마른기침을 토해내다가 침대보를 핏물로 적신 끝에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만을 알았을 뿐이었다.

 

  실리케가 플란츠의 이상을 눈치 챘을 때는 이미 플란츠가 뱉어내는 숨에 비릿한 내음이 섞여 있었다. 절망은 플란츠의 몸에서 빠르게 개화했다. 머지않아 침대보에 시든 꽃잎처럼 점점이 흩어지는 것들을 보며 실리케는 입술을 사리물었다. 검은 피는 제일가는 부정의 증거였다. 재수가 없으면 악마와 목숨을 거래했다는 의심을 살 수도 있었다. 실리케는 플란츠가 병이 들었다는 사실을 숨기려 했지만 본디 형체 없는 것들을 숨기고 또 감추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브리센의 장남인 플란츠 브리센이 하루아침에 반송장이 되었다는 소식은 사교계에 적잖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몇몇 사람들은 브리센이 그간 저질렀던 온갖 악행에 대한 업보를 일부나마 치르게 된 것이라 여기며 고소해했다. 몇몇 사람들은 그를 은밀히 동정했다. 또 몇몇 사람들은 브리센이 악마에게 영혼을 판 대가를 치르는 게 아니냐며 저열한 기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들은 가면과 부채 뒤에서 타인의 비극을 와인처럼 음미했고 그 행위를 통해 자신들이 얼마나 복받은 존재인지를 상기했다. 사교계는 그런 식으로 세대에 세대를 거듭하여 이어져 온 관계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비극의 여신이 비껴간 삶에 안도하며 샴페인을 터트렸다. 한때 사교계의 사람들이 브리센의 보물이라고 칭송하며 줄을 대기에 바빴던 존재가 동정하거나 비난해야 마땅할 존재로 전락하는 데는 단 하루면 충분했다. 사람들은 플란츠 브리센의 미래를 희망으로 점치지 않았다. 그것은 플란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내일을 기대하지 않는 자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플란츠는 하루의 반 이상을 잠으로 보냈다.

 

  지금은 그가 깊은 잠에 빠져 있을 시간이었다. 가뭄이 든 것처럼 자꾸만 마르는 혀를 침으로 적시며 어린 시종은 어느 과거를 떠올렸다. 가문이 몰락하는 바람에 단출한 옷가지만을 챙겨들고 저택에 들어온 첫 날이었다. 그 날 시종장은 어린 시종을 저택의 뒤편으로 불렀다. 빛이 희미하게 비껴드는 응달 속에서 어린 시종은 저택에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에 대해 낱낱이 전해 듣게 되었다. 두 발로 저택에 들어왔다가 땅에 묻히는 건 사양이었고 어린 시종은 시종장이 알려 준 저택의 불문율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어린 시종이 기억하기론 저택의 주인인 실리케를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도련님의 잠을 깨워서는 안 된다는 건 그 불문율 중 하나에 속했다.

 

  그러니 지금 청년이 올라가는 건 조금 곤란했다. 시종은 그 사실을 어떻게 하면 고상하고 우아한 귀족의 화법으로 알릴 수 있을까 싶어 고민했다. 살고 싶다면 높으신 분들의 비위를 해쳐서는 안 되는 법이었다. 슬리퍼가 리놀륨 바닥 위를 스치는 소리가 들린 건 그 순간이었다.

 

  이내 나선형 계단의 끝에서 저택의 유령이자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둑한 공간 너머에서 반짝이는 에메랄드빛 머리카락. 어린 시종은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청년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브리센의 에메랄드.”

 

 

  시종은 고개를 숙인 채 아연한 얼굴로 옆을 보았다. 브리센의 에메랄드. 그건 지금 나선형 계단의 끝에서 나타난 이를 두고 사교계에서 붙인 별칭이었다. 얼핏 듣기에는 좋은 말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귀족들은 겉으로는 칭송하면서 뒤로는 조롱과 험담을 일삼는 족속들이었다. 브리센의 에메랄드는 단순히 신이 섬세하게 빚어낸 주조물 같은 그의 용모만을 두고 한 말은 아니었다.

 

  에메랄드는 아름다운 광물이면서 깨지기 쉬운 광물이다. 그들은 플란츠의 용모를 칭송하는 척하며 하루아침에 반송장이 된 플란츠 브리센을 조롱한 것이다. 저택에서는 누구도 그런 식으로 플란츠를 지칭하지 않았다. 시종은 사태를 수습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도련…….”

 

 

  그러나 시종이 미처 말을 끝맺기도 전에 플란츠의 입술이 열렸다.

 

 

  “너.”

 

 

  어두침침한 저택에 플란츠의 목소리가 울렸다. 드넓은 저택의 가구처럼 있던 모든 고용인들이 소리가 들린 쪽을 일제히 쳐다보았다. 누구라고 지칭하지 않았음에도 자신을 향해 하는 말이라는 걸 알아챈 청년이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네.”

 

 

  플란츠는 오만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따라와.

 

 

 

*

 

 

 

  “무슨 변덕이지?”

 

 

  방문을 닫으며 플란츠는 물었다. 저택의 모든 고용인들은 자신의 허락 없이는 2층에 발을 들이지 않는다. 그게 저택의 불문율이다. 그러므로 방에는 누구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플란츠는 문을 닫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있는 놈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소 서슬 퍼런 물음에 칼리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날짜. 기억하십니까?”

  “기억해.”

  “마지막 날이니만큼 특별한 방법으로 들어오고 싶어서요.”

  “전혀.”

 

 

  전혀 특별한 방법이 아니라는 소리였다. 저택을 드나드는 실리케의 손님들은 누구나 1층의 거대한 문을 이용했다. 특별한 방법이라면 처음 나타났을 때가 훨씬 특별했지. 돌연 허공에서 나타났으니까. 그 모든 뜻을 함축한 말에 칼리안이 눈꼬리를 화사하게 접었다.

 

  정확히 나흘 전의 일이었다. 플란츠는 칼리안이 돌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던 순간을 어제 겪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하늘에 어물어물 조각달이 뜬 밤이었다. 그날 플란츠는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하염없이 아래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희미한 빛이 세상에 깔린 중에도 저택의 2층에서 내려다본 아래는 해구처럼 검고 깊었다.

 

  지금 여기서 떨어진다면.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그러한 생각은 이따금 불청객처럼 플란츠를 찾아오곤 했다. 불청객이 처음 플란츠의 마음을 두드린 건 플란츠가 자신의 이복동생이 실리케의 손에 떠밀려 계단에서 추락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부터였다. 플란츠는 어렸지만 아둔하지는 않았다. 시스파니안의 직계 혈족이라고 여겨지는 그 아이가 있으면 사교계에서 자신의 위치는 변방으로 밀려나게 되리라는 것도, 그래서 실리케가 미리 손을 썼다는 사실도 플란츠는 알았다.

 

  그리고 조금 더 자란 뒤에는 브리센 가문이 그 휘장 아래 어떤 죄악들을 감추고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언제나 딱딱하고 무섭게만 여겨졌던 지면이 말랑하고 폭신한 침대처럼 여겨지게 된 건 그 무렵부터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바닥은 너무나도 매혹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대로 몸을 내던진다면 이번에야말로 극적이고 편안한 잠을 맞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찰나의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며. 그러나 결국 플란츠는 번번이 고개를 돌리곤 했다. 죽음이 죄로부터 도피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기에.

 

  누군가는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죄 때문에 왜 사서 고통을 받느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플란츠는 브리센과 자신을 구분지어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간 무력하다는 이유만으로 브리센이 저지르는 온갖 부정과 죄악을 좌시하며 자신의 삶을 꾸준히 이어오지 않았던가. 브리센의 거대한 날개는 플란츠쯤은 충분히 숨겨내고도 남았다. 살고 싶어서, 숨 쉬고 싶어서, 무력해서. 그래서 그 날개 아래 몸을 의탁했다. 힘이 없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건 비겁한 면피용 변명에 불과할 뿐 면죄부가 될 수는 없었다.

 

  자신은 죽어서 결코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이다. 때를 잊고 일 년 내내 새하얗게 만발하는 르니에리가 무엇을 양분 삼아 피어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공범자였으므로. 함구의 대가는 죄책감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브리센의 양 날개를 잡아 꺾고 자신도 그 밑에 잠들고만 싶었다.

 

  이루어지지 않는 소망은 악몽처럼 이어진다. 칼리안이 찾아온 건, 그런 무수히 많은 나날 중 어느 한 날이었다. 그는 정확히 허공에서 한순간 나타나더니 날렵한 궁중 식 인사로 자신을 소개했다.

 

 

  “반갑습니다. 칼리안 레인 카이리스, 세상의 가장 밑바닥에서 당신을 데리러 온 사람입니다. 악마죠, 악마. 자기소개가 너무 거창한 건 싫으니 대충 이쯤하기로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당신 목숨을 가져가기 위해서 왔어요.”

 

 

  새빨간 눈에 칠흑처럼 검은 머리카락. 길게 자란 속눈썹과 곧게 뻗은 코, 티 한 점 없이 맑은 얼굴. 새까만 옷을 입고 있었음에도 칼리안은 어둠속으로 녹아들지 않았다. 칼리안은 어둠과 확연히 구분되고 있었다. 모든 어둠이 그의 뒤로 물러나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난데없이 나타난 존재에 심장이 쑥하고 지구 반대편으로 내리 꽂히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놀라긴 했지만 플란츠는 내색하지 않았다.

 

 

  “뭔데, 너.”

 

 

  사람은 갑자기 허공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게 예고도 없이 허공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내고는 유유히 창틀에 걸터앉지도 않는다. 플란츠는 멍청이가 아니었으므로 칼리안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처음 나타난 순간부터 알았다. 그가 구태여 악마라고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더라도 그 엇비슷한 부류라고 여겼을 터였다.

 

  그러니 너 뭐냐고 묻는 저의는 다른 데 있었다. 플란츠는 청년의 존재 그 자체에 대해 물은 게 아니었다. 네가 왜 내 이복동생과 꼭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왜, 네가, 새까만 머리에 빨간 눈을 하고서는 자신을 악마라고 소개하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 아이는 채 피어보지도 못한 꽃이었다. 꽃망울이 움트기도 전에 우아하면서도 무도한 손길에 꽃의 숨이 끊기는 것처럼 죽었다. 부조리한 삶이었다. 이 세상에 위대한 신의 섭리가 작용한다면 그 아이는 마땅히 나팔 부는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 하늘의 가장 고귀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왜 악마냐고.

 

  플란츠의 말에 칼리안은 입을 살짝 벌렸다. 당황한 건 아니고 어이가 없어서였다. 칼리안은 자신의 턱을 느리게 매만지다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보통 이럴 때는 왜 내 목숨을 가져가는 거예요? 하고 울지 않나?”

  “울면. 울면 무슨 소용인데.”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자세로 창틀에 앉아 있던 칼리안이 늘씬하게 뻗은 다리를 꼬며 씩 웃었다.

 

 

  “맞는 말이네요. 그래요, 소용없죠. 다 부질없는 원망이지. 그러니까, 내가 왜 죽은 당신의 이복동생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플란츠는 창밖에 시선을 두며 대답했다.

 

 

  “거슬려.”

  “솔직한 사람이네요. 너무 그렇게 날 세우지 말고. 세상에 똑같은 사람 셋은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 중 하나가 나라고 생각해요.”

  “…….”

  “못 믿어도 할 수 없고. 난 당신 설득하러 온 게 아니라, 당신 목숨 가져가러 온 놈이니까. 누가 브리센을 저주했거든. 그 눈에서 피눈물 좀 뽑아달라고. 있잖아요, 난 그저 그런 하급 악마는 아니라서 원래 그런 싸구려 의뢰에는 응하지 않거든요? 근데 그놈이 자기 목숨까지 손수 내주는데 어쩔 수 없잖아. 악마는 보기보다 양심적이라서. 주는 거 받아 챙겼으면 이쪽도 뭔가를 줘야 할 거 아닙니까. 안 그래요?”

 

 

  칼리안은 대수롭잖은 투로 말하며 어깨를 으쓱했다. 플란츠는 입술을 깨물었다가 입을 열었다.

 

 

  “이상해.”

  “또 뭐가요?”

  “보통, 그런 경우에는 소중한 걸 가져가기 마련 아닌가. ……브리센의 소중한 건, 내가 아니라서.”

 

 

  플란츠 브리센은 결코 브리센이 소중히 여기는 그 무엇도 될 수 없었다. 브리센이 좀 더 태양 가까이 닿기 위한 도구 정도라면 또 모를까. 가문 내에서 자신이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신랄하게 평하는 말에 칼리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럼, 당신은 뭐라고 생각하는데?”

  “반말.”

  “이제 와서? ……생각하는데요?”

 

 

  플란츠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명예. 돈. 권력. 한마디로 네가 날 찾아올 이유가 없어.”

  “맞아요. 당신은 브리센의 에메랄드지만 브리센의 소중한 건 당신이 아니지. 그냥, 변덕 같은 거죠. 내가 좀 지켜봤더니 이따금 창문 아래만 내려다보면서 죽고 싶어 하는 얼굴이던데.

 

 

  지면과 피로 얼룩진 키스를 하지 못해서 안달난 사람 같았다고, 당신. 칼리안은 불쾌한 투로 중얼거렸다. 플란츠는 심드렁한 얼굴로 칼리안을 일별했다. 관음 하는 취미라도 있는 건가. 이 악마는. 칼리안이 눈썹을 살짝 움직였다가 짧게 한숨을 뱉었다.

 

 

  “아무튼. 그래서 난 당신이 언제 뛰어내릴지 그것만 지켜보고 있었거든요. 말했잖아. 악마라고. 그런데 가만 보니 당신이란 사람은 그 죄책감까지 함께 죽일 정도로 뻔뻔한 사람은 또 못되어서, 그 예쁜 입술 깨물고 창문 닫으면서 돌아서는 꼴을 어디 한두 번 봐야 말이지. 그래서 내가 이김에 브리센도 죽이고 당신도 손수 죽여줄까, 했거든요. 근데 말이야, 그렇게 마음먹고 나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신 얼굴이 좀 취향인 거야. 난 아름다운 거 좋아하거든. 아, 좋아하거든요.”

 

 

  칼리안의 입에서 브리센을 죽이겠다는 말이 나온 순간 플란츠는 내내 창밖을 향하고 있던 몸을 돌려 칼리안을 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악마가 브리센을 몰락시키겠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었다. 플란츠는 이 인간의 상식을 뛰어넘은 놈이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내뱉은 대로 행할 수 있는 놈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브리센의 몰락. 그것이야말로 지난한 생에서 플란츠가 가장 바라마지않던 일이 아니던가. 그렇다면야 이제 창문을 닫고 등을 돌릴 일도 없어진 셈이다. 매번 자는 척을 하며, 징그러울 정도로 몸집만 부풀린 그리핀이 그 거대한 몸 아래에 감추어둔 일들을 은밀히 조사할 필요도 없다. 플란츠는 선선이 입을 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에서 가장 마음 편히 입술을 움직인 순간이었다.

 

 

  “그래. 해.”

 

 

  칼리안이 인상을 찡그렸다.

 

 

  “……당신 뭐 원하는 건 없어요?”

 

 

  플란츠는 느리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련이 없어도 너무 없네. 사람 같지 않게. 사람은 적당히 이기심이 있어야 포동포동 살도 찌고 영혼도 딱 먹기 좋게 되는 법인데 말이에요. 난 입이 고급이라 죽은 고기는 안 먹어. 죽기 직전에 내가 적선 한 번 하는 셈치고 뭐든 들어줄 테니 말이나 해봐요. 부귀영화, 여자, 술, 뭐든. 하룻밤의 꿈이어도 최상의 환락을 제공하는 게 우리의 의무거든. 이 얼마나 남는 장사고 밑지는 장사야.”

 

 

  조각달은 어느 새인가 구름 사이로 모습을 감춘 뒤였다. 그러나 희미한 달빛 한 점 들지 않는 곳에서도 청년의 얼굴은 소금기둥처럼 훤하기만 했다.

 

 

  “뭘 해줬으면 해요?”

 

 

  이미 져버린 계절의 빛깔을 닮은 분홍빛 입술이 달싹였다. 원해도 되는 건가. 과연 자신이, 무언가를 바라도 되는 것인가.

 

 

  “편히 말해요. 어차피 당신 죽을 텐데.”

 

 

  그러나 이어진 말이 망설임을 거두어 갔다. 플란츠는 닥쳐올 종언을 향해 대답했다. 최초이자 최후의 이기심이었다.

 

 

  “산책.”

 

 

  칼리안은 다소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지만, 플란츠의 말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성립한 나흘 치 계약이었다. 창틀에서 폴짝 뛰어 내려온 칼리안은 플란츠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럼, 일단 눈 좀 감아 볼래요?

 

 

  그때 플란츠는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분명 빛이 들 일이 없는데도 칼리안의 검은 머리카락 위로는 은은한 달빛이 흩뿌려져 있는 듯했다. 어서요. 그 광경을 잠시 보았다가, 재촉하는 말에 플란츠는 고분고분하게 눈을 감았다. 속눈썹이 온전히 내려가 눈을 덮은 직후 머리카락 스치는 소리가 났다. 칼리안의 숨이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싶었더니 차게 식은 손 위로 무척 따듯한 손이 겹쳐지는 것이었다.

 

  악마라도 체온은 있는 모양이군. 플란츠는 그런 것을 생각했고 이제 눈 떠도 된다는 칼리안의 말에 눈을 떴을 때 둘은 크림소다처럼 폭신한 구름 위에 앉아 있었다. 언뜻 내려다 본 발아래가 까마득했다. 그러나 저택의 2층에서 내려다보았을 때처럼 새까만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해구 같지는 않았다. 무수히 많은 건물 위로 희미한 불빛이 어룽져 있는 게 꼭 물 먹은 별들이 떠 있는 것만 같았다.

 

 

  “안 놀라네요.”

  “이제 와서.”

 

 

  플란츠는 피식 웃었다. 놀랄 거면 네가 나타난 순간부터 놀랐어야 맞는 거 아닌가.

 

 

  “하긴 그렇네요.”

 

 

  칼리안이 엄지와 중지를 딱 소리 나게 부딪혔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삽시간에 원형 테이블이 나타났다. 구름 위에서 다과라도 즐길 셈인 듯했다. 산책을 하자고 했더니 다과를 대접하고 있다. 생각하며 플란츠는 테이블 위에 아몬드 쿠키와 향이 진한 홍차가 나타나는 모습을 보았다. 희석된 피 같기만 한 물 위에 새하얀 르니에리 생화. 악취미가 따로 없다.

 

  플란츠가 멀뚱히 지켜보자 칼리안이 턱을 괴며 아, 하고 입을 열었다.

 

 

  “못 먹겠으면.”

 

 

  피아노를 치면 딱 어울릴 법한 손가락이 플란츠의 눈앞으로 뻗어왔다. 플란츠는 한손을 들어 그 손을 매몰차게 쳐냈다.

 

 

  “치워.”

 

 

  홍차 치워내려는 손 치우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칼리안은 사람 좋은 일 해주지 않는 악마답게 듣지 않았고 다음 순간 핏물 위에 둥둥 떠 있던 르니에리 생화는 감쪽같이 사라진다. 칼리안이 어깨를 들었다 내려놓으며 한숨을 푹 쉬었다. 정말 이상한 인간이라니까. 거북하면 거북하다고 말해요. 싫으면 싫다고 하고, 못 하겠으면 못 하겠다고 해. 당신이 나에게까지 쩔쩔맬 필요는 없잖아? 지극히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다음부터 플란츠는 칼리안이 알려준 대로 했다.

 

  지난 사흘 내내 칼리안은 플란츠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분주히 오갔다. 칼리안은 플란츠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나 창문을 통해 플란츠를 찾아왔고 그를 안아든 채 흔적도 없이 저택을 나섰다. 칼리안은 과연 인세의 상식을 초월한 존재였던지라 시공간의 영향조차 받지 않는 듯했다. 칼리안의 발걸음은 플란츠가 나고 자랐던 시대와 공간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눈을 감았다 뜨면 그곳이 먼 이국의 땅이 될 때도 있었고 투명한 빙하가 떠다니는 바다 위가 될 때도 있었다. 둘은 아득히 먼 곳에서 얼음이 부서져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따끈하게 데워진 차를 마셨다. 플란츠는 얇게 저민 딸기가 꽃잎처럼 쌓인 딸기차였고, 칼리안은 첫맛은 떠름하고 끝 맛이 상쾌한 민트차였다. 꿈 같은 시간은 빠르게도 흘렀다.

 

  그렇게 오늘이었다. 악마가 플란츠에게 약속한 나흘의 기간 중 딱 나흘째의 날.

 

 

  “그래서, 오늘은 뭐가 하고 싶어요?”

  “산책.”

  “간단해서 좋네요. 문으로 나갈까요?”

 

 

  잠시 고민하던 플란츠가 고개를 끄덕였다. 칼리안의 말대로 그들이 약속한 마지막 날이었다. 오늘이 지나면 이와 같은 경험은 두 번 다시 하지 못할 것이다. 돌이켜보면 순전히 자신만을 위해 두 발로 저택의 문을 걸어 나가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둘은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나선형 계단을 내려왔다. 곧 돌아올 주인을 위해 저택을 정리하고 있던 고용인들이 플란츠와 칼리안을 쳐다보았으나 그뿐이었다. 칼리안이 플란츠의 옆에 있었으므로 그들은 검은 머리에 빨간 눈을 한 악마와 그 악마의 손을 붙잡은 저택의 도련님이 저택의 문을 통해 빠져나갔다는 사실조차 이내 잊었다.

 

 

 

 

 

  둘은 내일을 모르는 연인처럼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파리의 한 거리에서는 젖은 이끼 냄새와 덜 마른 물감 냄새, 희미한 로즈마리 향과 곱게 갈린 원두의 향이 났다. 비가 내리는 탓에 수채화처럼 젖어 있는 도시를 노니며 플란츠는 색색의 포장지에 곱게 싸인 싸구려 사탕을 볼에 넣고 우물우물 씹었다. 플란츠는 우산을 쓸 필요가 없다고 했지만 칼리안은 그가 비를 맞지 않았으면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두 손가락을 딱 소리 나게 맞부딪쳐 우산을 꺼냈다. 딱 한 사람만을 위한 세계가 완성되는 데는 널따랗게 펼쳐진 우산살 정도면 충분했다.

 

 

  “대성당에 가보고 싶은데.”

  “나 악만데.”

  “알아.”

 

 

  그런데 그게 뭐. 칼리안은 플란츠가 속으로 삼킨 말을 빠르게 캐치했고 인간이란 족속들은 고작 나흘 만에 무척 뻔뻔하게 돌변할 수도 있다는 걸 실감했다. 그렇대도 어차피 손짓 한 번에 사그라질 목숨, 더 고차원적인 존재로서 들어주지 못할 것도 없었기에.

 

  그 결과로 둘은 세월처럼 유유히 흐르는 센 강의 물 위를 기적처럼 걸어와 일 드 라 시테에 있다. 칼리안은 성당의 전면 부를 빼곡하게 장식하고 있는 조각상을 질린 얼굴로 올려다보았다. 조각상 중에는 그가 떠나온 세계에서 보아왔던 얼굴이 몇 있지만, 플란츠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성당 내부에는 곳곳마다 빛을 밝히는 곳이 있었다. 플란츠는 색색의 샹젤리제와 일렁이는 촛불이 안을 흐릿하게 밝히고 있는 성당 내부를 둘러보았다가, 대뜸 말했다. 성당의 가장 높은 곳에 촛불을 올리고 싶은데. 처음에는 산책 하고 싶다는 말조차 꺼내기를 주저했던 인간이 이제는 망설임조차 없었다. 그러나 악마는,

 

  칼리안은 그게 기꺼웠다.

 

 

  “이거면 되겠어요?”

 

 

  첨탑의 꼭대기에서, 칼리안은 붉은 꽃잎이 겹겹이 쌓인 것만 같은 불꽃을 손 위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그리고 곧 악마답지 않게 후회했다. 손 위에 올려놓은 그 별 것 아닌 불꽃을 보며 플란츠가 먹먹한 얼굴을 한 탓이다. 이 도시의 모든 우울이 비스크돌처럼 창백하고 아름다운 얼굴 위로 흐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비가 너무 많이 오는 거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인간의 슬픔에는 익숙지 않다. 그것을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다. 그랬는데 그 순간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말을 막을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지. 난 아름다운 걸 좋아하고, 그게 망가지는 건 싫거든.

 

 

  “첨탑에도 우산을 씌워두면 좋을 텐데.”

 

 

  칼리안은 실없는 소리를 주워섬기며 제 손 위의 불꽃을 하늘과 가장 가깝게 맞닿은 곳에 올려 두었다. 예쁜 얼굴이 온통 엉망이에요. 중얼거린 말에 플란츠는 대꾸하지 않았다. 플란츠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칼리안은 아주 사려 깊은 악마였으므로, 플란츠가 감정을 갈무리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플란츠의 곁에 앉아 있었다. 변덕이라면 변덕이었다. 플란츠는 한참 뒤에야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다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제, 가. 칼리안은 어디로 갔으면 좋겠냐고 묻지 않았다. 어디든 좋거나 좋지 않을 것이었으므로.

 

  아무래도 비가 오는 도시를 선택한 게 잘못이었어. 칼리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약간의 고민 끝에 이번에는 구름 한 점 없이 아주 맑은 동네로 플란츠를 데려다 놓았다.

 

 

  “마음에 들어요?”

  “응.”

  “다행이네. 이제 다 울었어요?”

  “누가.”

  “아니면 말고요.”

 

 

  연초록빛의 활엽수와 짙고 푸른 침엽수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숲의 한 가운데에 비취색의 호수가 있었다. 들여다보면 얼굴을 그대로 비춰낼 것처럼 맑고 깨끗한 호수였다. 여긴 어디냐고 묻는 플란츠에게 칼리안은 친절히 대답했다. 크로아티아요. 낯선 국가의 이름이 다정함과 함께 흘러 나왔다. 둘은 정답게 손을 잡고 비취색으로 부서져 내리는 플리트비체 호수 위를 걸었다. 센 강을 건너갔을 때처럼.

 

  정말이지 파리와는 영 딴판으로 날이 아주 좋았다. 하늘에는 그 흔한 뭉게구름도 깃털구름도 떠다니지 않았으므로 모든 풍경은 꼭 호수 아래에 잠들어 있는 것만 같았다. 천국에 나팔수가 있다면 밀카 테르니나의 목소리를 하고 노래를 불렀으면 좋겠군. 플리트비체 호수를 걸으며 무심결에 그런 말을 하는 플란츠의 옆에서 칼리안은 숨죽여 웃었다. 그러네요. 동의하며 칼리안은 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 이것은 이 사람의 슬픔을 닮았다. 너무나도 맑아 속까지 내비치는 호수를 들여다보며 악마는 그런 생각을 했다.

 

 

  “조용하네요.”

  “그러게.”

 

 

  플란츠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곳은 바다였다. 물 실컷 봤으면서 왜 또 물 보냐고 칼리안이 물었더니 한번쯤은 바다를 보고 싶었단다. 하룻밤의 꿈에 불과할지라도 최고의 향락을 제공하는 게 악마의 의무였다. 보고 싶다는데 또 들어줄 수밖에. 칼리안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바닷가에 플란츠를 곱게 데려다 놓았다.

 

  플란츠의 시선은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너머를 응시하고 있었다. 칼리안은 지면에서 3cm정도 뜬 채로 플란츠의 옆에 서 있다가 이제는 그냥 플란츠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가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았다.

 

 

  “그 사람이, 무역상이어서.”

 

 

  플란츠의 몸에 흐르는 피의 반은 르메인의 것이었다. 그는 드넓은 바다와 대륙을 바삐 오가는 무역상이었다. 이름 높은 가문의 자제가 천시되던 상업에 손을 대었을 때 사교계에서는 그의 가문을 비웃기 급급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읽은 사람이 되었다. 막막하고 두렵게만 느껴졌던 바다 저 너머에 새로운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부터 그의 사업은 순풍에 돛을 단 듯이 술술 풀렸던 것이다.

 

  하지만 그와 정 반대로 가족 관계는 한없이 소원해져만 갔지. 땅의 가장 맨 밑바닥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는 입장이었던 칼리안은 알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과 물건 값을 두고 협상하거나 흥정하는 일에만 능했지 자식들을 돌보는 일에는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이복동생의 죽음도 그의 의도치 않은 방관 속에서 벌어진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끈끈하지 않았던 관계는 마치 유빙이 흐르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플란츠는 아버지라고 말하지 않은 것이리라. 사람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으므로 감정을 읽어내는 데 능숙하지 않은 악마는 빛을 등지고 선 플란츠의 옆모습을 보았다. 왜인지 그 얼굴이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와보고 싶었어.”

  “……그래요.”

  “엄청 파랗네.”

 

 

  그저 무한히 이어진 물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호흡을 잊게 된다. 그 정도로 압도적이고 매혹적이었다. 이런 광경이어서, 그렇게 집을 떠나 바다 위에서만 살았던 것일까. 영원히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을 테지만 그래도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그게 싫어서 플란츠는 바다로부터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만족해요?”

 

 

  물음은 머리 꼭대기가 아닌 등 뒤에서 들려왔다.

 

 

  “응.”

 

 

  파랬던 하늘 위로 붉은 빛이 넓게 번져나가고 있었다. 플란츠는 칼리안을 돌아보았다.

 

 

  “나는 이제 죽겠지.”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음을 둘 모두 알았다. 씁쓸함인지 후련함인지 모를 감정이 플란츠의 얼굴 위로 사이좋게 허물어지고 있었다. 칼리안은 석양에 불그스름하게 물들어가는 플란츠의 얼굴을 보았다. 새하얗고 창백해서 마냥 시체 같기만 했던 얼굴이 지금 이 순간 사람처럼 여겨지는 건 단순히 번져오는 빛 때문이었을까. 칼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지.

 

 

  “누구 마음대로요?”

 

 

  플란츠가 짧게 숨을 뱉었다. 저주의 상징이라고 여겨지는 새빨간 눈이 꼭 그처럼 붉게 물들고 있는 세상 한 가운데에서 선명하게 빛났다.

 

 

  “아닌가.”

  “기억 안 나나 본데, 당신은 악마랑 거래 했어요.”

  “……그런 기억, 없어.”

  “나한테는 있어요. 사실, 악마는 밑지는 장사 같은 건 안 하거든. 내가 당신에게 나흘의 말미를 줬으니 당신은 나와 거래한 셈이지.”

  “사기꾼.”

  “악마라니까?”

 

 

  플란츠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것 참 편리하고도 유용한 말이군.

 

 

  “그러니까, 그 순간부터 당신의 처음과 끝, 끝 이후의 시간까지 모두 내 거야. 내가 당신을 샀어요. 당신의 죽음조차 이제는 내 소유라는 소리죠.”

  “뭘 원하는데.”

 

 

  뭘 원하냐고. 그렇게 묻는 입술은 엊그저께 악마가 마주쳤던 새까만 고양이의 분홍빛 앞발바닥 같기도 했고 갓 피어나는 연분홍빛 꽃 같기도 했고 악마가 가장 끔찍이 싫어하는 계절을 한 데 그러모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럼에도 사랑스러워서.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악마는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나와 함께 가요.”

  “나를 포동포동 살찌운 다음에 뼈와 살과 영혼을 취하겠다고 한 건 언제고.”

  “말했잖아. 난 아름다운 걸 좋아한다니까요?”

  “…….”

  “지옥은 가장 결백한 죄인을 위해 예비 된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도 스스로가 천국에는 발 못 붙일 영혼이라고 생각하잖아.”

 

 

  칼리안의 말에 플란츠는 사선으로 내리 비끼고 있었던 시선을 들었다.

 

 

  “……약속해.”

 

 

  플란츠는 칼리안과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눈으로 되짚었다. 인간의 시선이 닿지 않는 그 아득한 끝에는 브리센의 대 저택이 있으리라.

 

 

  “저 끔찍한 걸 무너뜨리겠다고.”

 

 

  칼리안은 예쁜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걱정 마요. 그거야말로 악마가 제일 잘 하는 거 아닌가? 그거면 되겠어요?”

  “……그래.”

 

 

  그리하여 마침내 페르세포네는 석류 세 알을 입에 넣게 된 것이다. 칼리안의 손이 플란츠의 턱을 붙들었다. 플란츠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키스할 때, 코는 어디에 두는지 알아요?* 플란츠는 칼리안이 보기에 몹시도 예쁘장한 입술을 달싹였다가 대답했다.

 

 

  “몰라.”

  “그럼, 일단 눈 감아요.”

 

 

  기다란 속눈썹이 에메랄드빛 눈동자를 서서히 덮는다.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악마는 보석 위에 베일이 덮이는 그 광경을 황홀하게 지켜보았다. 쥐고 있는 고개를 살짝 틀고 입술을 내리자 영원처럼 입술이 맞닿았다. 가슴이 뛴다. 칼리안에게는 무척 생경한 감각이었다.

 

  이윽고 불길이 두 사람을 덮었다.

 

 

 

*

 

 

 

  그 도련님, 사실 악마에게 잡혀갔대. 어느날 갑자기 이불 한가득 피를 토하고 죽었다는데. 어린 시종이 그걸 발견했다나 뭐라나.

 

  브리센의 업보지. 당해도 싸. 사람을 한 둘 죽였니?

 

  게다가 암암리에 아편도 유통시키다니! 보안청의 고위 인사 여럿이 관련되어 있다는 얘기, 들었어?

 

  들었어. 하지만 그 도련님은 무슨 죄야?

 

 

  “그러고 보니.”

 

 

  사람의 인적이 드문 어느 한 거리, 새까만 머리카락에 빨간 눈을 한 사람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당신 정말 후회 안 해요? 내가 함께 가자고 하긴 했지만, 막 강요할 생각은 아니었거든.”

  “잘도.”

 

 

  잘도 그랬겠다는 뜻이었다. 아, 너무 티 났나. 칼리안은 입을 가리며 숨죽여 웃었다. 플란츠는 그 모습을 흘겨보았다가 덤덤히 대답했다.

 

 

  “안 해.”

  “다시는 못 볼 텐데도?”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말이에요. 사실 지옥이 그렇게 아름다운 곳은 아니거든요. 물론, 내가 있으니 어느 정도는 아름답긴 하겠지만. 그 말에, 플란츠는 햇빛 아래 산산이 부서지는 풍경을 보았다가 칼리안을 보았다.

 

 

  “그러니 무슨 상관이지.”

  “응?”

  “너를 가졌잖아.”

 

 

  한낱 인간이 하는 말치고는 무척 대담하고 또 발칙했다. 칼리안은 유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네요. 당신이 나를 가졌어.”

 

 

  난 아름다운 걸 사랑하니까.

 

 

  “그러니 키스할래요?”

 

 

  플란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불길 대신 칼리안이 붙든 새하얀 로브의 끝자락이 두 사람의 얼굴을 가렸다. 베일 너머 성례와도 같은 입맞춤이 이어진다. 생의 시작이었다.

 

 

 

 

2019. 06. 24.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1943) "키스할 때 코는 어디에 두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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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플란] 평범한 인생

2차/적왕사2020. 10. 9. 09:21

 

 

  구석구석 향기 없는 라리시움이 만개한 날이었다. 플란츠의 생일을 맞아 눈송이처럼 흰 꽃들이 체르밀 궁에서부터 플란츠의 시선이 닿는 곳곳을 마법 등불처럼 눈이 부시게 밝혔다. 왕족의 탄신일에는 라프라니아로 궁을 장식한다는 법칙은 칼리안의 생일 때 깨진 지 오래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파격적인 배치였다. 비록 종이로 만든 모조꽃이긴 했으나 그때도 궁 구석구석을 수놓은 건 피처럼 붉은 꽃잎이었다. 요컨대 생명을 상징하는 붉은빛을 안배해둠으로써 왕족의 장수와 무탈을 기원하는 식으로 그럭저럭 구색은 맞추었다는 얘기다. 그러니 플란츠의 탄신일에 자신의 얼굴을 알리고자 지그프리드 관을 방문한 귀족들 사이에서 말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전하께서 제2왕자에게 세자위를 내리시더니 이제는 홀대하시기로 마음을 먹은 거 아닙니까."

  "그렇다면 역시 일전에 세자 저하께서 발칸을 이끌고 후작 저로 가신 일을 마음에 두신……."

  "하지만 꽤 된 일일 뿐더러 그때 엘라자르를 몸소 보내시지 않았습니까?"

  "그게 꼭 왕세자의 위신을 생각해서라고는 볼 수 없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보다는……."

 

 

  지그프리드 관에 모인 모든 이들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상석에서 플란츠는 짧은 숨을 뱉었다. 플란츠의 곁에 선 키리에가 플란츠 쪽으로 고개를 숙이고 귀족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을 소근소근 전했을 때였다. 소란스럽고 왁자지껄하며 금세라도 뭔가 일이 터질 것처럼 유쾌한 분위기도 무도한 소리를 완벽하게 가리는 장막이 되지는 못했다. 분위기에 취해 제 이야기를 늘어 놓기에 여념이 없는 다른 귀족들에게라면 또 모르겠으나 칼리안의 충직한 따까리에게는 그랬다.

 

  사교계는 비열하고 얄팍한 의심을 통해 누군가를 배제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는 방식으로 계승되어 온 사회였다. 그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이따금 숨이 막히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눈에 익을 만큼 본 광경이라고 생각했는데도 문득 목께까지 꽉 채운 단추가 갑갑하게 여겨졌다. 플란츠는 무의식중에 목덜미에 손을 갖다대려다 말고 앞에 놓인 잔을 움켜쥐었다. 피처럼 붉은 석류 주스가 가볍게 찰랑였다.

 

  얘기를 하던 중 뒤늦게 아차 싶었는지 한차례 소리가 잦아 들었다. 몇몇 이들이 눈치를 살피듯 플란츠가 앉은 쪽을 곁눈질 했다. 플란츠는 그 시선을 알면서도 짐짓 모르는 체하며 석류 주스만 가만히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러자 불 위에 모래를 끼얹었을 때처럼 잦아 들었던 소리가 다시금 그 크기를 은근하게 키웠다. 눈치를 보던 이들이 조금 더 대담하게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갔다. 르메인이 세자를 홀대하기로 마음을 먹은 게 아니냐는 터무니없는 속삭임은 공상에 공상을 더해 급기야는 제3왕자의 세자위 찬탈설로까지 이어졌다.

 

 

  "쉿, 말 조심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로하임 경."

  "허나 그게 아니고서야 칼리안 왕자님께서 왕세자 저하의 탄신일을 기념하고자 열린 연회 때 잠깐 얼굴만 비추고 돌아갈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토록 우애가 좋다고 알려진 두 분이었는데요."

  "그것도 그렇습니다만……."

  "더군다나 잠깐 얼굴을 내비치셨을 때 마치 들으라는 듯이 '드릴 게 없어 죄송합니다. 저하.'라는 말까지 하지 않았습니까. 게다가 전하께서는 어떠한 질책도 하지 않으셨고요. 이건 역시……."

  "그러고 보면 브리센 남작의 그 일이……."

 

 

  한 백작이 애매하게 말 끝을 흐렸다. 생명을 상징하는 붉은 꽃 대신 향기 없는 라리시움을 안배한 이유가 무엇인지에서부터 칼리안의 세자위 찬탄설로 뻗어 나갔던 이야기가 급작스레 궤도를 수정하여 몇 달 전에 있었던 일로 이어졌다.

 

  비밀은 감추어 내려고 하면 할수록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성질이 있었다. 브리센 남작이 브리센 후작의 목을 치려 했다는 사실은 이제는 사교계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불명예스러운 일화였다.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명예를 중히 여겼던 그레이는 그의 아들이 제 목을 치려 한 사실을 엄중히 은폐하고자 하였으나, 그가 세간의 시선으로부터 감추어 내려 한 사실은 어느 틈엔가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아스트리샤 거리를 휩쓸었다.

 

  라시드 브리센이 그레이 브리센을 내치려 했다는 이야기는 늘 타인의 치부를 갈급하는 귀족들의 목마름을 해갈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하나뿐인 어머니를 제 손으로 내친 왕세자를 떠올리게끔 했다. 그것은 몹시도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새끼 늑대라는 이명이 붙은 게 벌써 언젯적 일인데도 몇몇 귀족들은 플란츠를 브리센의 피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브리센에는 배반과 약탈과 패륜의 피가 흐른다. 귀족들은 혀 끝에서 달콤하게 부서지는 아이싱 쿠키를 음미하듯 그 간결한 문장을 씹고 뜯고 맛보기를 즐겼다.

 

  그리고 사람에게는 자신이 생각하거나 보는 대로 타인의 속내를 짚어보는 오만한 경향이 있었다. 아스트리샤 거리를 휩쓴 브리센 부자의 이야기를 시종으로부터 전해들은 이들은 르메인이 전전긍긍해 하며 밤잠을 설친다고 생각했다. 왕세자가 발칸을 이끌고 브리센 후작저를 포위한 날부터 르메인은 줄곧 목덜미가 쌔한 기분 속에서 지낼 것이라 여겼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브리센에는 자신의 근본을 부정하고자 하는 피가 흐르고 있었고 마법사에게는 단 한 명만으로도 기사단을 궤멸시킬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이들이 모여 만들어진 발칸이 왕세자의 명에 따라 국왕의 숨통을 움켜쥐는 날이 오지 않으리라고 그 누가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그들은 이렇게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 날 국왕이 엘라자르를 보낸 것은 사실 왕세자에게 경고하기 위함이었으며, 국왕의 마음은 그날부터 차근차근 세자에게서 떠나기 시작했노라고. 그것을 기민하게 눈치 챈 3왕자가 이 틈을 타 세자위를 찬탈하려 든다고.

 

 

  "과연,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새끼 늑대라 하여도 근본은 변하지 않으니까요. 그러고보면 지금도 왕세자의 곁에 그 기사가 있지 않습니까. 이 역시 경고의 의미겠지요. 허면 이 라리시움은……."

  "제3 왕자님의 입김이 닿고 그것을 전하께서 수용하신 결과 아니겠습니까."

 

 

  이야기가 몇 번이고 돌고 돈 끝에 누군가 명쾌한 해답처럼 내놓은 그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아니고서야 하필 전 왕비가 애지중지하던 르니에리와 같은 빛깔을 띠면서, 향기라고는 하나 없는 라리시움을 안배해 둘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러니 칼리안은 마땅히 그 향기를 지녀야 할 꽃이면서도 향기라고는 일절 없는 라리시움을 통해 플란츠에게 일종의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플란츠를 왕세자의 자리에서 끌어 내릴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지금 플란츠가 손에 쥐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어려움 없이 빼앗고, 한 순간에 플란츠를 향기없는 라리시움처럼 볼품없는 존재로 전락시킬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실리케의 최후가 그러했듯이.

 

 

  "그게 사실이라면, 실로 우아한 방식으로 자신의 야욕을 드러내신 셈이군요."

 

 

  한숨과 놀라움이 반반 섞여 마치 두려움처럼 뱉어진 말에 몇몇 귀족이 다시 심란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키리에가 쉼없이 전해주는 말을 토대로 그들이 세자위 찬탈을 언급하는 이유를 추론해 낸 플란츠는 각자가 생각하고 보는 대로 모든 현상을 파악하고자 하는 그 우스운 꼴을 내버려 두었다. 우회적으로 말하는 수법에 익숙해진 이들이 라리시움 하나를 두고 온갖 허황된 추측을 내뱉는다 하여 놀라울 것은 없었다. 자신의 하나뿐인 동생은 아직도 파릇파릇한 콩줄기를 키워내는 걸 평생의 업으로만 삼을 줄 알지 세자위를 빼앗을 생각은 요만큼도 하지 않으며, 라리시움은 꽃향기를 꺼려하는 자신을 위해 소 같은 르메인이 안배해둔 것이라고 정정해 줄 필요도 없었다. 낭설일지언정 그것이 장차 정치적으로 필요한 소문이라면 그저 흐르는 대로 두는 게 가장 좋았다.

 

  맹수의 엄니로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들을 물어 뜯는 법밖에 모르는 이들을 속이기 위해서라면. 플란츠와 칼리안의 사이가 갈라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이들을 덫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면.

 

 

  "이렇게 되면 역시 란델 왕자님 편에 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얼마 전에 텐실의 왕세자가 찾아왔다죠. 장차 텐실과 손을 잡자는……."

 

 

  불온한 말들이 한여름의 햇빛처럼 끈적하게 고였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서 섣불리 발설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발언이라는 걸 깨달은 이들의 어색한 웃음소리가 금세 그 위로 뒤덮였다. 끈적하게 고인 말들이 웃음 아래에서 시궁창의 물처럼 흘러내렸다. 이제 연회장을 메우고 있는 것은 금빛 샴페인처럼 휘황한 빛과 무언가를 감추기 위한 인공적인 미소뿐이었다.

 

  얼마 안 가 플란츠는 조금 전까지 삼삼오오 목소리를 높여 말하던 이들 사이에 명백한 의도를 담은 시선이 소리없이 오가는 것을 보았다. 적어도 이번 주 내로 저들 간에 은밀한 회동이 있을 터였다. 거기까지 생각을 끝마친 플란츠는 방금의 시선까지 포함하여 오늘 보고 들은 걸 모조리 칼리안에게 전해 줄 심산으로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 뒤에 익숙한 손길이 닿은 건 그때였다. 돌아보지 않고서도 알 수 있었다. 칼리안이라는걸.

 

  칼리안에게는 존재만으로도 다른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그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간에 타인의 시선을 주목시키는 힘이 있었다. 그저 연회장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소란스러운 연회장을 가라앉히기에는 충분했다. 떨떠름한 얼굴로 선 플란츠에게 "웃으셔야죠. 형님." 하고 재빠르게 속삭인 칼리안이 해사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하께서 피곤하신 것 같으니, 이만. 경들은 천천히 즐기도록 하세요."

 

 

 

*

 

 

 

  "나의 형님께서 이상한 부분에서 고지식한 구석이 있으셔서."

  "짖지."

  "마법사들과 약속하신 걸 잊으셨을 리는 없는데, 그러면 왜 여태 기별이 없으실까……. 그걸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자연스레 나올 때만을 재보고 계신 것 같기에 이 아우가 형님의 수고를 덜어드리고자 모시러 간 것뿐입니다."

  "……그래."

 

 

  빌헬름 관에 빼곡하게 늘어 선 설치물을 보며 플란츠는 다소 얼빠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역시나 마법사들 중에서도 가장 돌아버린 카이리스의 마법사였으며 그 돌아버린 카이리스의 마법사 중에서도 더 돌아버린 발칸의 마법사들이었다. 생일까지 한 달 여 남짓 남았을 때부터 부군단장님의 생신은 제일 화려하고 멋지고 쿨하게 치러드려야만 한다고 별 난리에 난리를 다 치며 돌림 노래를 부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을 실행에 옮기고도 남을 놈들이라는걸!

 

 

  "마음에 드십니까, 저하?"

  "너무 감격하셔서 말문까지 막히신 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때 빌헬름 관에 부군단장님의 얼음 동상을 세워두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아예 마법으로 부군단장님의 건물 하나를 세우면 안 되겠냐는 말을 하는 놈들이 있긴 했지만 설마 그걸 실행에 옮기랴 싶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도 안 되는 헛소리 하지 말라는 요지의 문장을 무척 부드럽게 꺼내며 그 말도 안 되는 제안을 일축했으니 그 화제는 거기서 일단락 된 줄로만 알았다. 일축하자마자 한 풀 꺾인 얼굴을 하더니, 그래도 좌우지간 세상에서 제일 화려하고 멋지고 쿨한 생일상을 치러드릴 테니 부군단장님께서도 다가 올 생일을 기대하며 지내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가.

 

  앞의 말이 무척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다가 올 생일을 기대하며 지내셨으면 좋겠다는 그 말이 무척 좋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어서. 누군가에게는 태어난 날이 곧 축복이라지만 자신에게는 축복과 동의어로 여겨진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그래서 몹시도 말 잘 듣고 순한 왕세자답게 기대하며 지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을 사는 동안 기대를 해 본 적이 희박해서 그들이 말한 기대에 부응하는 기대를 하면서 지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다렸다.

 

  그리고 정확히 어제였다. 발칸으로부터 서신이 상달되어 왔다. 네모 반듯한 편지에는 탄신 연회가 끝날 즈음에 빌헬름 관으로 와주십사 하는 요청이 정갈하게 적혀 있었다. 말로 해도 되는 것을 굳이 격식 따져가며 서신으로 전한 것은 이상한 데서 융통성이 없고 고지식한 마법사다운 방식이라고 할 법했다. 플란츠는 그 즉시 빌헬름 관으로 달려가 루시와 안네에게(루시와 안네는 니들렌이 지니고 다니는 소금 넣지 않은 닭고기를 호시탐탐 노리곤 했다) 닭고기를 주고 있는 니들렌에게 대답했다. "알았어."

 

  편지에 적힌 매우 공손한 그 문장이 검에 새긴 시나스타의 필체와 몹시도 같았으나 부군단장이자 왕세자 된 도리로 너그럽게 모른 척한 건 덤이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르메인의 축사다 뭐다 하며 연회가 길어졌고, 그렇다고 주인공인 이상 멋대로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으니 언제쯤 빌헬름 관으로 가면 좋을지 고민하던 차에 칼리안이 온 것이었다.

 

  플란츠는 칼리안의 손에 이끌려 약속한 시간보다 조금 늦게 빌헬름 관에 도착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미친 마법사들이 벌인 행태를 목격한 덕분에 할 말을 잃은 얼굴로 눈만 깜박여야만 했다. 가까스로 입을 열 수 있게 된 건 시도때도 가리지 않고 멍멍 짖는 아우님께서 멍멍 짖기 시작한 이후부터였다.

 

 

  "……."

  "부군단장님 동상이랑 건물은 안 된다고 하셔서, 그럼 루시랑 안네는 어떨까 싶었거든요. 앗, 설마 저하 놀라셨습니까?"

 

 

  그래, 놀랐다.

 

  내 동상이랑 건물 세우지 말라고 했다고 루시랑 안네의 동상이랑 조각상을 세울 줄은 몰랐으니까.

 

 

  "참고로 부군단장님께서 루시와 안네의 역동성에 중점을 두고 표현해보라 하시기에 그렇게 했습니다."

  "저희보다 저하께서 더 잘 아실 테지만……. 저건 빗방울을 잡는 루시, 저건 부군단장님의 서류에 앞발을 올려 놓는 안네, 저건 닭고기를 빼앗으러 오는 냥아……, 아, 아니. 닭고기를 가지러 오는 안네와 루시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마법사."

 

 

  쓸데없이 마법을 잘 하는 놈들만 모인 탓에 루시와 안네의 동상은 어디에 세워놔도 부끄러울 것 없는 위용을 뽐내는 것은 물론이요 니들렌이 말한 대로 동상 같지 않은 역동성마저 지니고 있었다. 심지어 그게 다가 아니다. 어두운 밤이라 못 볼 게 염려 되었다면 마법 등불로 주변을 밝히면 될 것을, 무슨 생각에서인지 루시와 안네의 눈은 별처럼 빛나고 있기까지 했다. 거기다 자유분방하게 뛰어 놀고 있는(동상이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정도로 역동적이었으니까!)동상의 저 끄트머리에는 머리에 완두콩을 소중하게 올려 놓은 안네와 루시의 얼음 조각상이 있었다.

 

 

  "네."

  "내가……."

 

 

  하지만 플란츠는 몇 마디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마주한 광경이 다소 어이없긴 했지만 이들이 어떤 마음으로 이런 짓을 했는지 모르지 않는다.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여느 때 같았더라면 웃기 바빴을 아우님도 지금은 조용한 거겠지. 플란츠는 짧은 한숨 같은 것을 뱉었다가 더디게 말을 이었다. ……고맙다는 말, 하고 싶어서.

 

 

  "쑥쓰러우니 그런 말씀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니들렌의 말에 곁에 있던 몇몇 발칸의 대원이 요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플란츠는 그들의 얼굴에 아침 햇살처럼 희번한 웃음과 미미한 부끄러움이 번지고 있는 걸 모르는 체했다. 니들렌이 큼큼거리며 목을 가다듬더니 입을 열었다. 실은, 저하의 생신을 축하드리고자 준비한 게 또 있습니다. 베른 경 것도 포함해서요.

 

  그 말을 시작으로 선물이 앞다투어 건네졌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손에 한아름 안긴 것들은 태반이 루시와 안네에 관한 것들뿐이었지만 싫지 않았다. 싫을 리가 있겠나. 플란츠는 받은 것들을 소중히 품에 그러 모았다. 히나가 정성스레 털실로 짠 듯한 고양이 옷과 모자와 소금 들어가지 않은 닭고기와 루시와 안네를 본따 만든 미니 동상 등등……. 두 손 가득 끌어 안고도 벅찰 만큼 가득한 마음들이었다. 그 누구도 무가치하다 할 수 없는 다정이었다.

 

 

  "아, 그리고 이것도……."

  "이건."

 

 

  니들렌이 그제야 생각났다는 양 내민 건 파도에 쓸리고 갈려 물방울 모양으로 곱게 다듬어진 조약돌이었다. 전체적으로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는데 달빛에 비추면 희끄무레한 흰빛으로 물드는 게 얼핏 보면 시나스타를 닮은 것 같기도 했다. 어딘가의 미친 마법사처럼 컬렉션이라도 완성하라는 건가. 일전에 받았던 소라껍데기와 돌들을 떠올리며 말하자 니들렌이 씩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래주시면 감사하고요. 참, 다음 번에는 다른 것도 갖다 드리겠습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타오르는 사막의 모래라든가, 그 사막에 잠든 드래곤의 비늘 같은…….

 

 

 

*

 

 

 

  "사랑 받고 계시네요. 형님."

 

 

  체르밀 4층으로 돌아와 받은 것들을 책상 위에 한가득 늘어 놓았을 때였다. 오래 전부터 체르밀 4층을 제 집처럼 여기게 된 검은 고양이가 플란츠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와 곁에 섰다.

 

  사랑 받고 있음을 누가 모르겠냐마는 굳이 타인의 입으로 전해 듣는 건 어딘가 낯부끄러운 감이 있다. 그렇지만 그 말을 부정하거나 무시하고 싶지 않았던 플란츠는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 받고 있다는 말에 대답을 약간 주저하긴 할지언정 결국은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게 되고, 사랑 받고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껍게 여길 수 있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깊게 생각해 볼 것도 없이 그 기원을 따지고 올라가 보면 언제나 눈앞의 고양이가 턱하니 걸리곤 했다.

 

 

  "기쁩니다. 이 아우는요."

 

 

  -게다가……. 아무것도 가져본 적 없어서 잃어버린 것도 없을 내 형님은. 아마도 여전히, 불행하시고.

 

 

  플란츠는 불현듯 어떤 예감, 혹은 영혼이 이끄는 소리에 순응하듯이 몸을 돌리고 칼리안의 뺨에 한 손을 올렸다. 더는 탁하게 잠겨 들지 않는 붉은빛 눈과 세상 그 무엇보다도 싱그럽게 피어날 준비를 끝낸 연둣빛 눈이 서로를 마주했다.

 

 

  "……전부, 아우님이 알려주셨으니."

 

 

  앞과 뒤를 잘라 먹고 맥락도 없이 툭 던져진 말이었지만 칼리안은 플란츠의 말을 알아 듣는 데는 이골이 난 사람이었다. 사랑 받는 것, 사랑을 받는 게 두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 사랑을 받는 게 잘못된 일도 아니라는 걸 네가 알려주었으니까. 그러니 지금의 내가 이렇게 존재한다는 의미를 담아 말 짧은 왕세자 답게 축약한 문장이었다. 그 말에 칼리안이 말 잘 듣는 고양이처럼 플란츠의 손에 제 뺨을 비비며 잔잔하게 웃었다.

 

 

  글쎄요. 어떨까요. 제 생각에, 아마도 이것만은 제가 알려드린 게 아닙니다. 형님께서는 원래 그런 분이셨어요.

 

 

  충분히 사랑 받을 자격이 있고 또 누군가를 사랑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말. 단지 엄동설한 언 땅 밑에 파묻힌 꽃씨처럼 움틀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자신이 언 땅을 손수 손으로 파헤치고 녹여가며 피어날 수 있게 도와준 것뿐이라는 말.

 

 

  "아……. 그러고 보니, 어쩌죠. 정말 준비하지 못했거든요. 선물."

 

 

  말 잘 듣고 예쁨 받는 고양이처럼 한참 자신의 뺨을 플란츠의 손에 비비며 고롱대던 칼리안이 문득 생각났다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갖고 싶은 거, 있으세요? 말씀 해주시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준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유년의 순수함을 간직한 소년처럼 웃는다. 다분히 의도가 담긴 웃음이었다.

 

  플란츠는 두 손으로 칼리안의 뺨을 붙들었다. 그러고는 검은 고양이의 코끝을 아프지 않을 정도로 깨물었다가 놓으며 말했다.

 

 

  "준비 했잖아. 선물. 여기, 있는데."

 

 

  가장 갖고 싶은 거. 작게 접붙인 말에 칼리안이 자신도 모르는 새에 무럭무럭 자라 난 아이를 보는 것처럼 가슴이 벅찬 얼굴을 했다.

 

  

  "내가 욕심이 많아서."

 

 

  갖고 싶거든. 지금.

 

 

  "그 욕심은 언제까지 유효하신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플란츠는 주인이 떠난 뒤에도 불이 꺼지지 않고 있는 지그프리드 관의 불빛을 일별하며 말했다.

 

 

  "아우님께서 그 날의 일을 사과하실 때까지."

  "평생, 이라는 거네요."

  "응."

 

 

  너무하세요, 형님……. 이렇게 욕심쟁이실 줄은 몰랐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사방으로 튀는 물보라처럼 맑은 웃음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입에서 터져나갔다. 약속처럼 손과 손이 맞잡아졌다. 둘은 각자의 손을 나무뿌리처럼 단단하게 얽은 채 왈츠를 추는 것처럼 걸어 침대로 향했다.

 

  영롱한 별빛과 달빛이 두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풍요롭게 쏟아져 내렸다. 이윽고 오금이 침대 모서리에 닿은 칼리안이 뒤로 풀썩 넘어지듯이 침대에 누웠다.

 

 

  "그러고 보니, 피곤하지 않으시겠어요."

  "이제와서."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알았으면. ……가만히 있어. 칼리안."

 

 

  어느 틈엔가 제 위에 날래게 올라탄 플란츠의 한 손을 낚아챈 칼리안이 그 끝에 입을 맞추며 종달새처럼 속삭였다. 형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저를 취하세요. 그것이 저의 기쁨이 되기도 할 테니. 발칙한 고양이의 가슴팍을 드러내는 일에 막 열중하려던 플란츠가 한쪽 입꼬리를 끌어 당기며 오만하게 웃었다. 그러도록 하지.

 

 

 

2019. 11. 12 플란츠 생일 기념으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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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나는 꿈

2차/적왕사2020. 10. 4. 12:29

 

 

  카이리스의 북서부에서 이상한 숲이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올라온 건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처음 그 숲을 발견하고 곧바로 아르피아 궁에 보고를 올린 남작이 이상하다는 수식어를 붙인 건, 타국보다 겨울이 길고 몹시 추운 카이리스의 북서부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활엽수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서였다. 과연 불가해한 현상이었다. 남작은 감히 그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는 해구를 내다 보듯 치를 떨며 왕실의 도움을 구했다. 치를 떨었다는 건 곧 두려워했다는 뜻이다.

 

  아르피아 궁에 상달된 남작의 보고서는 발칸의 흥미를 끌었다. 본디 미지란 세계의 이치를 낱낱이 알고자 하는 마법사들에게는 무척 매혹적인 제안으로 다가오게 마련이었으므로. 그러니 플란츠의 정보 조직 겸 군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발칸의 마법사 중 한명이 용감하게 그 숲을 조사하겠노라 자원하고 나선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르피아 궁에서 업무를 보고 있던 플란츠는 마법사의 출궁을 선선이 허락했다. 그게 플란츠가 생을 통틀어 두 번째로 내린 오판이라는 걸 알아차리는 데는 딱 하루면 충분했다. 명색이 6서클씩이나 되는 자가 꼬박 하루가 다 가도록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표면적으로 놓고 보자면 실로 불경한 일이었다. 발칸은 왕의 군대이자 왕의 수족이길 자처한 집단이었다. 왕궁에서 그 사실을 모르는 이는 누구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발칸이 왕의 허락을 받고 궁을 나가 멋대로 돌아오지 않다니? 궁에는 그 어디에나 귀와 눈이 있었기에 돌아오지 않는 마법사에 대한 이야기는 금세 깃털처럼 둥실둥실 궁을 떠돌았다.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의아해했다. 하지만 그러한 의문은 그들이 어째서 왕의 수족인지, 그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는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발칸이 왕의 수족을 자처하고 나서는 건 왕이 죽으라면 죽어야 하는 위치여서가 아니었다. 플란츠는 그들에게 자신을 위해 목숨을 내걸라고 종용한 적이 없었을 뿐더러, 그들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내거는 걸 바라지도 않았다. 플란츠가 발칸에게 요구한 건 딱 하나였다. 마법사답게 싸우고, 마법사답게 싸우지 않을 것. 각개격파를 해야 할 상황이라면 마법사답게 한 명 한 명을 거꾸러트리고, 그래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면 기사처럼 응집하여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라는 뜻이었다. 플란츠의 요구사항은 그것뿐이었다.

  

  사사로운 정을 결부시키지 않은 명령은 실로 군대에게 적합한 어명이었다. 정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절망 속에서 사람을 건져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람을 물귀신처럼 끌어 들여 같은 수렁에 처박곤 했기에. 플란츠는 개인의 비극이 집단의 비극으로 나아가길 원하지 않았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자는 스러질 때도 혼자 스러져야만 하는 의무가 있었다. 그 대상이 수많은 피를 밟고 올라선 자라면 더더욱.

 

  그러므로 그들이 스스로를 수족이라 일컫는 건 무척 단순하고 순수하게도 그들이 그것을 바라서였다. 그들은 팔과 다리, 어느 한부분이 썩기 시작하면서 끝내 몸 전체로 퍼지는 죽음을 막고자 환부를 도려내듯 플란츠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자신들을 잘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곧 플란츠를 향한 맹목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마법사의 신의는 기사의 충의와는 다르다. 그들은 따지고 보자면 무척 개인주의자였고, 플란츠와는 사사로운 정으로 얽힌 관계가 아니었기에 만일 자신들의 신의에 반한다면 언제든 플란츠의 명을 거부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플란츠는 브리센과 결탁한 예순 여섯 가문을 가지 치기 하듯 은밀하게 쳐내는 일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그 마법사가 이 틈을 타 도망을 친 거라면 그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마법사를 대신하여 숲에는 자신이 직접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빠르면 빠를 수록 좋다고 여기면서도 곧바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 건 그 즈음하여 대사막 인근에서 수상한 동향이 포착된 탓이었다.

 

  돌아오지 않았던 마법사가 돌아온 건 그로부터 일주일 뒤였다. 그는 숲에서 부모님을 뵈었다고 했다. 플란츠는 그가 다섯 살이 되던 해 부모님이 곰에 물려 숨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틀림없는 부모님을 만났고 심지어 그들과 칠면조를 뜯어 먹으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래, 마치 예전처럼.

 

  플란츠는 그날 아르센을 불러 명을 내렸다. 양신전쟁 이전의 일화가 기록된 책을 모두 찾아오도록. 마법사. 아르센은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플란츠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와 같은 얼굴을 하며 미간을 찡그렸다. 영 내키지 않아 했고 무척이나 꺼림칙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아르센은 하기 싫은 일은 죽어라 하지 않는 마법사였기에 플란츠의 명을 받들었다. 명색이 하얀 악마들의 군단장인 아르센과 그 휘하의 사단장들은 실로 모양 빠지게도 사흘 밤낮이나 자신들의 몸을 갈아가며 시스테라 대륙 전역에 퍼진 고금도서를 수집했다. 플란츠가 남작의 보고를 듣고 막연하게 세웠던 가설은 그들이 수집 한 책을 본 순간 현실이 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악신이 깨어나기 직전, 대륙 곳곳에서 시간과 공간이 뒤틀린 장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플란츠는 얼마 전부터 꾸기 시작한 흐릿한 꿈을 떠올렸다. 이 세상을 거대한 해일처럼 뒤덮는 거대한 악의.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완전무결해야 하는 신이었기에, 세렌티가 태초에 잘라 낸 자신의 반쪽이자 대륙의 절반을 죽음으로 몰아간 원흉. 그리고 그런 종말을 당당하게 마주 보고 선 별빛처럼 빛나는 자의 모습. 플란츠는 자신이 갑자기 꾸기 시작한 꿈과 갑자기 나타난 이상한 숲이 악신의 재림을 알리는 하나의 지표라 여겼다. 그래서 플란츠는 아르센만을 대동하고 숲으로 향했다. 지고의 자리에 있었음에도 모두가 그의 죽음을 축복처럼 바라고 있었기에 한밤중에 궁을 빠져나가는 미친왕의 걸음을 제지하는 자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숲은 과연 남작이 말한 대로 카이리스의 북서부에서는 볼 수 없는 행색을 하고 있었다. 숲의 어귀에서, 아르센은 이 안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니 부디 몸을 조심하시라 말했지만 그가 입을 떼었을 때 플란츠는 이미 안쪽으로 성큼 걸음을 옮긴 뒤였다. 플란츠의 모습은 아르센이 붙잡을 틈도 없이 숲에 녹아들었고 아르센은 황급히 그를 뒤쫓았다. 그러나 아르센이 안쪽으로 발을 들이자마자 그를 반긴 건 플란츠가 아닌 살아 숨쉬는 것처럼 너울거리는 울창한 숲이었다. 그 어디에서도 미친 왕의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보석과 유리를 곱게 갈아 어지러이 흩뿌린 듯한 햇살 아래 완벽한 정적과 고요만이 아르센을 반겼다. 이내 아르센은 자신의 마법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결계가 쳐졌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숲이 플란츠를 부른 것일까. 어찌 되었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가 돌아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길뿐이었다. 운명은 실로 잔혹해서 살기를 바라는 자에게는 가차없는 죽음을 선사했고 내일 죽어도 상관없을 것처럼 위태로운 칼날을 맨발로 걷는 자에게는 놀라운 생을 부여했다. 아르센은 자신의 어린 주군이 살아 돌아오리라 확신했다.

 

  아르센은 드높은 하늘까지 그 가지를 뻗고 있는 거대한 나무에 등을 기대 앉았다. 숲은 다른 곳보다 이르게 어둠을 흡수하는 성질이 있었다. 그가 몸을 기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둠이 녹인 설탕처럼 대지에 끈적하게 스며 들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오늘은 달조차 구름 사이로 그 모습을 감추어 보이지 않았기에 짙은 어둠이 사방을 장막처럼 내리 덮었다. 불현듯 아르센은 플란츠를 떠올렸다. 그 어둠을 제 몸처럼 두르고 눈을 뜨고 있음에도 뜨지 못한 자처럼 위태롭게 걷는 어린 왕을 떠올렸다. 퍽 유쾌한 생각은 아니었다. 따라서 아르센은 쓸데없는 생각을 떨치고자 생각의 가지를 다른 쪽으로 뻗어나갔지만 공교롭게도 생각은 플란츠를 구심점으로 하여 이어질 따름이었다.

 

  원치 않게 이어진 생각은 끝내 미친 왕을 처음 대면한 날에까지 가닿았다. 물 한 점 스며들 여지 없는 불모의 땅처럼 한없이 삭막했던 눈을 떠올리고 나니 오래 전에 죽은 제3왕자가 당연한 수순처럼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죽은 자가 살아 오기를 바라며 세뉴 강에 안네루시아를 띄우는 날이었다. 아르센은 짐승의 아가리처럼 그 입을 벌리고 있는 어두운 숲을 노려 보았다. 오래 전에 부모님을 잃은 발칸의 대원은 자신이 숲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을 뵈었다고 했다.

 

  아르센은 확신했다. 숲은 처음부터 플란츠를 부르고 있었다.

 

 

 

*

 

 

 

  홀로 걷는 일에 익숙했던 왕은 한참이 지난 뒤에야 파란머리 마법사가 보이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난데없는 일행의 실종에도 왕은 당황하지 않았다. 어차피 누구도 제 곁을 평생토록 지키고 서 있으리란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던 탓이다. 플란츠는 내일의 새로움을 기대하기보다 다가 올 상실을 준비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손에 쥐기는커녕 가까스로 손에 닿았던 것들마저 당연한 장례처럼 떠나보내는 삶이 그의 인생이었다. 아르센은 플란츠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축에 속했다.

 

  동시에 플란츠는 자신이 죽기 전에는 이 숲을 빠져 나가지 못할 것이란 생각도, 영겁토록 이 숲에 갇혀 있을 것이란 생각도 하지 없었다. 그의 삶에는 부채가 너무나도 많았고 그 부채로 말미암아 그는 살아남아야만 했다. 이름도 모르는 수많은 타인의 목숨을 값으로 지불하여 유예시킨 자신의 생이 이런 데서 끝이 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의 삶은 아주 공정하게 재단된 끝에 정확한 값을 치르는 방식으로 끝이 나야만 했다.

 

  플란츠는 신중하게 걸음을 옮겼다. 희끄무레한 어둠이 물안개처럼 퍼져 있었던 숲은 중심부로 들어갈수록 어째서인지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사위가 마치 눈이 뒤덮인 평원처럼, 아니 그보다는 온 세상에 어둠이 두루 내리깔린 시간에 별빛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듯이 희게 빛났다. 그 풍경은 플란츠에게 마음 한 구석이 서늘하게 베이는 듯한 기분을 선사했다. 그토록 명민한 머리로도 어째서 그런 기분이 드는지는 알지 못했으나 계시처럼 알게 된 게 하나 있었다. 그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나아가는 의무의 연속이었다는걸. 이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는걸. 플란츠는 불가사의한 힘에 떠밀리듯이 발걸음을 옮겼다. 태어난 이후로 줄곧 해온 일이었기에 어렵지 않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플란츠가 숲의 중심부에 이르렀을 때, 그의 앞에 펼쳐진 건 아주 드넓은 공터였다. 플란츠는 두어 번 눈을 깜박였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로 밝혀둔 것처럼 눈이 부시도록 환하게 타오르는 광경 속에 이런 자리에는 어울리지 않는 탁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그 탁자 위에는 체르밀 궁에서 자주 보곤 했던 티포트와 찻잔까지 옹기종기 놓인 채였다. 플란츠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 안일한 생각을 하기엔 그 위에 놓인 찻잔과 티포트가 너무나도 눈에 익었으므로. 플란츠는 다만 생각했다. 실로 질 나쁜 장난이군. 그때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았다는 듯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형님!"

 

 

  플란츠는 소리가 들린 쪽으로 삐걱대는 목을 돌렸다. 체르밀에서 가장 어린 아이가, 일찍이 별이 되었다고 믿었던 아이가 그곳에 있었다. 플란츠는 주저앉지 않았다. 왕은 그가 밟고 올라 선 사람을 생각해서라도 함부로 무릎을 꿇을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그저 잿더미처럼 무너지는 숨이 발치로 무겁게 떨어질 따름이었다. 다섯 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을 잃은 마법사는 숲에서 부모님을 보았다고 했다. 르니에리 향기에 단 한번도 잠식되지 않은 머리는 오늘이 어떤 날인지를 떠올렸다. 플란츠는 오래 전에 거스러미가 인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가 피를 토해내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 어디에서도…."

 

 

  죽은 자는 살아 돌아오지 못하는 법이거늘. 플란츠는 그렇게 말하려 했다. 그래, 그 어디에서도 죽은 자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지극히 위대한 고룡이 자신의 반려를 잃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세크리티아 대왕이 네리아드를 살리지 못한 슬픔에 하늘을 찢어 낼 듯한 비통을 터트리며 울부짖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오는 날이 있기를 바랐다. 단 하루라도 좋으니 자신이 사랑했고 떠나 보내야만 했던 이를 만나기를 바랐다. 그런 바람이 모이고 모여 카이리스에서는 암암리에 10월의 마지막 일을 기리는 풍습이 생겼다. 본래는 망자를 떠나 보낼 때 세뉴 강에 올리는 안네루시아를, 이 날 하루만이라도 망자를 다시 만나길 바라는 바람을 담아 강 위에 띄우는 것이다. 이때 만약 안네루시아가 강의 흐름을 역류하여 오면 죽은 자가 살아 돌아 왔음을 뜻한다.

 

  사람들은 안네루시아가 강의 흐름을 거슬러 자신에게 되돌아 온다면 그 즉시 사랑하는 이에게 하루의 유예를 선사한 세렌티를 찬미하며 집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지금까지 그런 사례가 목격된 바는 없었지만 죽은 이와의 재회를 간절히 염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사그라들 줄을 몰랐다.

 

  사람들은 죽음이 생에 관여하는 모순을 기적처럼 바랐다. 하지만 플란츠는 단 한 번도 그런 것 따위를 바란 적이 없었다. 그러니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네가 살아 돌아왔을 리 없다. 플란츠는 눈앞에 있는 칼리안을 닮은 무언가에게 그런 말을 하려 했다. 할 수 없었다.

 

  길게 자라 내린 앞머리 사이로 드러나는 그 눈이 기억에 있는 것과 똑같아서, 물을 머금은 시나스타가 그 두 눈에 영롱히 박혀 있는 것만 같아서, 웃을 때 볼우물이 깊게 파이는 게 이 순간을 박제해두고 싶을 만큼 사무쳐서, 안네루시아보다는 라프라니아의 빛을 닮았다 여기고 싶었던 붉은 입술이 자아내는 자신의 이름이, 그 이름이 온몸을 난도질하는 고통조차 달가워서, 그래서 플란츠는 하려던 말을 목구멍 아래로 수장시켰다. 성에라도 언 것처럼 파르라니 질렸던 분홍빛 입술이 몇 번이고 떨렸다. 플란츠는 욕지기처럼 치미는 것들을 참아 내며 가까스로 말을 이었다.

 

 

  "이렇게 밝은 빛은. 보지 못했는데."

 

 

  그래서 이렇게 밝았나. 별이 되었던 네가 땅에 내려왔기에. 작게 벌어진 입술에서 새어나온 문장은 추운 겨울 날 서리서리 엉켜 하늘로 올라가는 숨처럼 희끄무레한 꼬리를 늘어뜨리며 공중으로 올라갔다. 어느 틈엔가 준비해 둔 다과 테이블 앞에 야무지게 착석한 칼리안이 플란츠를 보며 예쁘장하게 입꼬리를 당겼다. 망막에 접붙인 것처럼 한시도 잊을 수 없었던 웃음. 그럼에도 잊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웃음. 감히 기억하는 건 어린 동생의 죽음을 모욕하는 일이라 여기며 하루에도 수십번씩 무엇도 잊지 못하는 뇌를 짓이기는 상상을 하게끔 만들었던 웃음. 그 웃음이 따스한 선물처럼 오래 전에 죽은 눈 위에 내리앉았다.

 

 

  "딸기, 아직 좋아하세요?"

 

 

  칼리안이 자신의 맞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플란츠는 허리에 무거운 닻을 매고 질질 끄는 것처럼 비척비척 걸어 칼리안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

  "다행이다!"

 

 

  칼리안은 정말 다행이라는 것처럼 활짝 웃으며 티포트에 담긴 차를 따랐다. 얇게 저민 딸기로 깊게 우린 딸기차의 향이 코끝을 파고 들었다.

 

 

  "싫어지셨으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그럴 리가."

 

  

  애초에 그 자신의 호오 같은 건 아무래도 좋은 것이었다. 플란츠는 칼리안이 건넨 찻잔을 말없이 받아 들었다. 그 날 물어 보았을 때 네 붉은 눈을 보고 떠오른 과일이 딸기였을 뿐, 사과가 떠올랐다면 사과를 좋아한다 했을 것이고 체리가 떠올랐다면 체리를 좋아한다고 했을 것이고, 이도저도 다 상관없이 네가 다른 걸 좋아한다고 말했다면, 그 역시 좋아한다고 했을 것이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한 채.

 

 

 

*

 

 

 

  왕은 몹시도 명민하였다. 차라리 한번쯤은 눈을 감고 모르는 체하는 게 나을 부분에서마저 그 명민한 머리는 왕을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 때문에 왕은 자신이 걸어온 걸음걸음마다 놓인 꽃의 시체를 자신의 손이 닿지 않았다 하여 모르는 척 할 수 없었다. 브리센이 저지른 악업은 모조리 그의 죄로 이어졌다. 세렌티의 축복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영특한 두뇌는 그가 두 눈을 감고 스스로를 속이게 두지 않았다. 언제나 그러했다.

 

  그래서 왕은 알아차렸다. 갓 태어난 병아리처럼 삐약거리며 제 흥에 겨워 재잘재잘 말을 이어가던 아우가 "형님이 어쩔 수 없이 그러셨다는 거, 저는 알고 있어요. 전 형님을 원망하지 않아요. 용서했어요. 전부."라고 말했을 때에. 미처 피어보지도 못하고 꽃가지가 꺾이는 것처럼 죽어야만 했던 자신의 아우가, 단 하루만이라도 살아 돌아온 게 아니라는걸.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자신의 양친이 곰에 물려 숨졌다고 한 발칸의 대원은 숲에서 돌아가신 양친을 만나 칠면조를 뜯어 먹으며 화기애애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는 이전부터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부모님을 다시 만나 원없이 고기를 뜯어보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게 유일한 꿈이라는 말은 덤이었다.

 

  그래, 그 어디에서도 죽은 자는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왕은 오래 전에 지상으로 추락한 별의 잔재를 빼어 들었다. 결국 두 번이나 동생을 구하지 못한 이가 처음으로 바치는 시나스타였다.

 

 

 

*

 

 

 

  아르센이 다시 플란츠를 본 건 예리하게 깨진 사기 조각처럼 파르스름한 빛이 숲을 가득 뒤덮을 즈음이었다. 근 몇 시간이 지난 뒤에야 숲에서 빠져 나온 플란츠는 아르센이 표현하기에 실로 가관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르센 헤르츠는 플란츠 루 룬 카이리스의 곁에 서서 그의 종말을 무엇 하나 빼먹지 않고 지켜보기로 결심한 자였으나 그의 가장 인간적인 슬픔을 들여다 보고자 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번만큼은 물을 수밖에 없었다.

 

  일 년 뒤 자신이 모시는 자와 함께 타국을 침략하게 될 발칸의 군단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뭘 보고 오셨습니까.

왕은 대답한다. 무엇도 비추지 못하는 무감한 눈으로.

 

 

  "깨어나야 할 꿈."

 

 

 

 

2019. 10. 31 할로윈 기념으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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